구국학생연맹(구학연) 사건

1986

구국학생연맹(구학연)은 1986년 3월29일 서울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주사파 조직이다.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에 기초해 활동을 했으며, 1986년 5월21일 부산 美문화원 점거사건 이후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공안당국에 노출됐다. 같은 해 10월28일 건국대에서 열린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투쟁연합’ 발대식에서 공안당국의 철저한 진압 및 검거로 조직이 해체됐다.

사건설명

구국학생연맹(구학연)은 서울대 양대 운동권 세력 가운데 하나인 자민투(自民鬪)의 상위 지하조직으로 표면적으로는 ‘반미(反美)구국’과 ‘군부파쇼타도’를 내세웠다. 공안당국은 그러나 구학연이 내부적으로 북한의 대남 혁명 노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을 지향했다고 보았다. 구학연은 주사파(主思派)의 효시격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 단체결성

구학연은 서울대생 5명이 네 차례 회합을 갖고 강령-규약 등을 논의한 뒤, 1986년 3월29일 서울대 자연대 22동 404호실에서 약 70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됐다. 당시 결성식에서 학생들은 손가락을 깨물어 ‘반미구국’, ‘반미투쟁’ 등의 글을 혈서로 쓰기도 했다.

■ 조직체계

구학연의 조직은 중앙위원회 아래 조직부, 투쟁부, 대외사업부, 선전부 등 4개 부서를 두고 조직부 산하에 각 단과대 단위의 ‘지역’(地域), 그 아래 ‘지대’(支隊)를 두었다. 지역은 사회대를 제1지역으로 하는 등 모두 5~6개가 있었으며, 각 지역 마다 다시 3~4개의 지대를 두었으며, 투쟁부 산하에는 자민투(自民鬪,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를 두었다.

■ 강령 및 규약

구학연의 강령은 ▲미제(美帝, 미국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파쇼통치체제를 분쇄, 민족의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 ▲모든 국민의 민주적 제(諸) 권리 쟁취 ▲진보적이고 민족민주적인 교육제도 확립 ▲민중생존권쟁취 ▲조국의 자주적 통일 ▲제국주의의 모든 침략전쟁 반대와 한반도의 평화옹호를 위해 투쟁한다 등 6가지를 내세웠다. 구학연은 또 규약을 통해 조직의 목적을 ‘열혈 애국청년 학도의 민주적 역량을 총결집하는 것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회원자격은 ‘반미구국투쟁에 헌신 할 자로서 조직노선을 관철하고 조직규율을 준수할 자’로 정했다.

■ 의무 및 수칙

구학연은 조직원들의 ‘일상생활수칙’에서 ▲모든 생활에서 미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조국과 민중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한다. ▲자신의 몸은 해방전사(戰士)의 몸임을 자각하고 음주, 흡연, 절제 및 알맞은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규정한 뒤 이를 암송케 했다.

■ 조직검거 및 해체

구학연은 1986년 5월 자민투 산하에 5월 특위(特委)를 두고 학살원흉 처단 투쟁 및 민주제 개헌 투쟁을 벌였다. 같은 해 5월21일에는 부산 美문화원 점거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구학연은 조직이 공안당국에 노출되어 대다수의 조직원들이 검거 및 수배됐다. 구학연은 1986년 10월28일 건국대에서 벌어진 ‘전국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발대식에서 공안당국의 철저한 진압 및 검거로 조직이 일망타진됐다. 구학연에서 활동했던 대표적 운동권 인사로는 김영환, 김기식, 정대화(현직 변호사), 홍진표, 하영옥 등이 있다. 김영환은 ‘강철서신’을 통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운동권의 핵심이념으로 만든 인물이다.

김 씨는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자신의 조직원들과 함께 전향, 현재 계간지 '시대정신'을 통해 북한 민주화와 탈북자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