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1979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1964년), 통일혁명당 사건(1974년)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지하공산혁명조직을 결성, 불온전단을 뿌리고 도시 게릴라 방법에 의한 강도행위 등을 자행하면서 민중봉기에 의한 남한 체제 전복을 꾀한 사건이다.

사건설명

■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은 1960년대 제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한 지하공산혁명조직이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공안(公安)사건으로 사건발생 당시 구자춘 내무부 장관은 1979년 10월9일 경찰이 북한의 적화(赤化)통일혁명 건설을 꾀한 대규모 反국가단체를 적발, 총책 이재문(李在汶) 등 일당 20명을 10월4일 검거하고 나머지 54명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배후조종자로 수배된 이재문은 1976년 2월 남한 체제 전복을 위해 학생, 교직자 등 74명을 포섭, 이른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를 조직하고 10대강령, 9대규약, 10대생활규범, 4대임무, 3대의무 등을 만들었다.

불온전단을 뿌리고 도시 게릴라 방법에 의한 강도행위 등을 자행하면서 민중봉기에 의한 국가변란을 획책했던 남민전은 제2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관련 사형수 8명의 옷을 모아 물감을 들여 북한기(北韓旗)를 모방한 남민전 깃발을 제작했다. 경북대 법대를 나와 <민족일보> 기자로 근무했던 이재문은 민청학련 사건 이전에는 인혁당 중앙상위 조직부책으로 정부 전복을 꾀한 혐의로 검거,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남민전은 이재문이 위원장인 중앙위원회 산하에 총무, 조직, 교양선전선동, 출판, 통일전선, 무력, 대외연락 및 정보, 재정 등 9개 부와 검열위원회와 서기 및 지역책을 두고 그 산하에 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 위원장 임헌영)라는 전위(前衛)조직을 설치, 청년-학생-농민-노동-연합-교양 등 6개 부와 지도요원 및 221대(특수행동대)를 편성했다.

남민전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보냈으며, 조직원 상당수가 가명(假名)을 사용했다. 이들은 혜성대(彗星隊)라는 행동대를 조직한 뒤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땅벌작전’ 등의 암호를 사용하면서 기업인의 자택과 금은방에 침입, 3차례에 걸쳐 50여 만원의 금품을 털었다.

경찰은 1979년 10월16일 추가수사발표를 통해 이들이 반(反)정부적인 일부 학생, 지식인, 근로자 등을 선동, 대규모 민중봉기를 일으키고 봉기한 민중과 남민전 무장전위대로 인민해방군을 조직, 전국 각지에서 국가전복투쟁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남민전은 혁명시기가 성숙되면 김일성에게 북한군의 지원을 요청하고 남한의 혁명세력과 북한군의 배합으로 투쟁을 강화, 공산민족혁명이 성취되면 모든 용공세력을 규합, 남북연합 정부를 수립하려 했다. 이 계획에 따라 간첩죄로 기소중지 중이었던 안용웅(安龍雄)이 이재문의 지령에 따라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신년 메시지와 사업보고서를 휴대하고 일본을 통해 월북했다. 이 같은 남민전 활동의 최종목표는 베트남식 공산화 전략이었다.

■ 남민전은 한국사회를 미국과 일본의 신(新)식민지로 규정했다. 남민전은 10대 강령 제1조에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일체의 ‘신(新)식민지 체제’와 그 ‘토착 지배체제’인 박정희 정권을 투쟁대상으로 삼았다. 남민전은 신(新)식민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신(新)식민지란 제2차 세계대전 후 후진국의 민족의식이 고양되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더 이상 구식민지 정책과 같은 무력적이고 폭력적인 직접통치를 할 수 없게 되자 후진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형식적 독립정권을 수립시키고 그 정권으로 하여금 후진국을 통치케 하고 그 정권의 배후에서 간접적으로 후진국을 지배, 후진국의 이윤을 착취하는 지배체제를 말한다. 이란의 팔레비나 한국의 朴정권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81년 대검찰청 공안부 발행 《좌익사건실록 제12권》, 321페이지)

남민전은 이 같은 신(新)식민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反외세 투쟁을 일으켜 ‘민족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연합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민전이 주장한 ‘新식민지’ 이론은 1985년 결성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 승계되고, 그 무렵부터 좌파진영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등장한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주변부자본주의론’ 등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발전했다. 경찰은 1979년 11월 중순까지 3차례에 걸쳐 입북자 1명, 해외체류자 1명, 수배자 2명 등 모두 4명을 제외한 도합 74명의 사건관련자들을 검거했다.

관련자 중에는 앞서 언급한 제1차 인혁당 사건 때부터 관련된 이재문을 비롯, 안재구(安在求) 前 숙명여대 교수, 김승균(金承均) 前 <사상계> 편집장, 임헌영(任軒永, 본명 임준열, 現 민족문제연구소장) 문학평론가, 이재오(李在五) 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現 새누리당 의원), 박문담(朴文淡)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북부연합회원, 김종삼(金種三) 가톨릭농민회 조사부원, 권영근(權寧勤)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 윤관덕(尹寬德) 기독교산업문제연구원 간사 등이 포함됐다.

경찰은 같은 해 12월 이들 중 68명을 구속 송치하고 자수자 등 18명은 불구속 송치했다. 검찰은 1980년 5월 열린 1심 공판에서 이재문과 안재구, 신향식(申香植), 최석진(崔錫鎭) 등 4명은 사형을, 이해경(李海景), 임동규(林東圭), 박석률(朴錫律), 차성환(車成煥) 등 4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65명에게는 최고 징역 15년, 최하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의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 중 민투 관련자 25명에게는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항소심의 선고공판은 1980년 9월에 열려 이재문, 신향식 2명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안재구와 최석진 2명에게는 무기징역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車成煥에게는 징역 15년을 각각 선고, 세 피고인에게 형량을 낮추고 나머지 70명에 대해서는 전원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남민전은 그 인적구성과 강령을 보관한 수괴가 북괴를 왕래했다는 점 등으로 보아 反국가단체임이 분명하며, 민투와 민주구국학생연맹(민학련)도 남민전의 산하단체로서 체제상 反국가단체가 아닌 反체제단체로 위장하고 있으나 남민전의 전위(前衛)조직이라는 점에서 反국가단체임이 분명하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상고심 선고공판은 12월 열렸는데, 1명을 제외한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 항소심 판결을 확정시켰다.

이로써 이재문, 신향식 2명은 사형이, 안재구, 최석진, 이해경, 박석률, 임동규 등 5명에게는 무기징역이 각각 확정됐다. 사형이 확정된 이재문은 1981년 10월 서울 서대문 구치소에서 병사하고, 서울대 철학과 졸업생인 신향식은 이듬해 10월 형이 집행됐다. 대법원은 남민전 산하 민학련 관계자로 1980년까지 연세대 시위를 조종한 혐의로 1981년 4월 구속기소된 장신환(張信煥, 現 원광디지털대 교수), 이성하(李聖河), 김치걸(金致杰) 3명에 대한 상고를 기각, 장신환, 이성하 2명에게 징역 7년을, 김치걸에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노무현 정권 들어 발족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민보상위, 위원장 하경철)는 2006년 3월 남민전 관련자 29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민보상위는 신청자 33명 가운데 이학영(李學永, 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경선 출마자), 김남주(金南柱, 시인, 1994년 2월13일 사망)와 그의 부인 박광숙(朴光淑), 이수일(李銖日, 前 전교조 위원장), 임준열(任俊烈, 필명 임헌영, 現 민족문제연구소장), 권오헌(權五憲, 現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 후원회 회장) 등의 행위를 유신체제에 항거한 것으로 판단하고, 민주화 운동 관련자 인정 결정을 내렸다.

민보상위는 이들이 고위 공직자 집에 침입해 금도끼와 패물을 훔친 ‘봉화산 작전’과 최원식 前 동아건설 회장 집을 털려다 붙잡힌 ‘땅벌사건(작전)’, 중앙정보부의 자금줄로 생각한 금은방 보금장을 털려고 했던 ‘GS작전’, 그리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카빈소총 1정을 화장실 창을 통해 軍부대 밖으로 빼돌린 총기밀반출사건도 모두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남민전 사건 관련자 중 홍세화(洪世和, 現 진보신당 대표)와 이재오(李在伍) 의원 등은 신청을 하지 않아 심의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보상위는 2006년 9월 추가로 여타의 남민전 관련자 42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박석률(朴錫律), 윤관덕(尹寬德), 임규영(林圭映) 등에 대해서는 각각 5000만 원씩을, 최석진(崔錫鎭,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멘토’로 알려진 승려 법륜의 친형)에 대해서는 상이보상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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