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1992

1992년 10월 발표됐던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건국 이후 최대간첩사건으로 분류된다. 북한은 당시 조선로동당 서열 22위 간첩 이선실을 남파, 95년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 하에 남한에 조선로동당 하부조직인 중부지역당 등을 구축했다. 이 사건으로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와 민중당 내 지하지도부를 구축, 간첩활동을 한 손병선, 민중당 전 공동대표 김낙중, 전 민중당 정책위원장 장기표 등 62명이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사건설명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활동 내용

1) 조직 체계

남한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의 조직 체계는 황인오를 책임비서로 하여 검열책 최호경, 선전책 장창호, 조직책 정경수 등 3명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를 두었다. 당을 결성할 때에는 황인오, 최호경, 정경수, 은재형으로 중앙위원회를 구성했으나, 황인오가 볼 때 은재형은 지도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 황인오는 이후에 은재형을 제외하고 동생 황인욱의 추천을 받은 장창호를 새 중앙위원으로 임명했다.

중앙위원회의 임무와 기능은 네 가지였다.

첫째, 중부지역당의 강령·규약 제정 등 기본 노선 결정.
둘째, 보안-생활수칙 제정 및 주체 확립.
셋째, 조직원 인입(引入) 방법 모색, 대오 확장 및 후비대오 축성.
넷째, 기관지 발간, 대중조직화 사업 등 조직사업 논의였다.

중앙위원회 산화에는 강원도당위원회, 충북도당위원회, 충남도단위원회와 황인욱이 직접 관리하고 대중 선전선동을 전담하는 편집국을 설치했다.

강원도당 산하에는 외곽조직인 ‘애국동맹’(구(舊) <1995년 위원회>, 조직원 241명)을 구성하고, ‘애국동맹’ 산하에 ‘5.1노동동맹’, ‘11.11 농민동맹’, ‘8.28 학생동맹’ 등 분야별 투쟁동맹 조직을 두었다. ‘애국동맹’은 최호경이 1990년 12월 국내 운동권과 북한이 제시한 ‘1995년 통일 원년의 해’에 대비하고 ‘한민전’의 노선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학습지도한 NL계 주사파 조직원 241명을 규합하여 결성한 조직이다.

결성 당시 명칭은 ‘1995년 위원회’였다. 황인오는 1991년 8월 북한으로부터 조직을 “간결하게 정예간부화(정간화)하라”는 지령을 받았고 ‘1995년 위원회’를 ‘애국동맹’으로 재편했다.

2) 조직원 영입 과정

중부지역당의 조직원 영입원칙은 네 가지였다.

첫째, 지도책과 산하 각 당위원회는 3선까지 배치 가능하다.
둘째 하부 조직 간에는 횡적 연락이 불가능하고, 직속 상부망 또는 전체 회합 시에만 상호 연락한다.
셋째, 하부선은 반드시 상부선의 지시에 의해서만 성원을 영입한다.
넷째, 성원 영입에는 제한이 없으며, 능력에 따라 복선 포치도 가능하다는 방침을 정해놓았다. 영입대상자가 혁명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는가, 김일성 주석을 존경하는가, ‘한민전’을 남한 혁명의 전위대로 인정하는가, 조직보안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인가, 다른 지도선이 있는가 등의 다섯 가지 조선을 완전히 충족시켰을 때 자신이 ‘조선노동당’원(또는 ‘한민전’ 성원)임을 밝히고 영입했다.

※맹세문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나는 조선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나는 민중과 운명을 같이하는 민중의 벗이다.
-나는 목숨 바쳐 조선과 혁명을 지킨다.
-나는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이다.

3) 중부지역당의 지도 이념

‘중부지역당’은 ‘조선노동당’ 규약을 모방하여 만든 총 7장 32개 조항으로 된 규약과 6개항으로 된 맹세문이 있다. 규약과 맹세문은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을 것,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전사가 될 것, 죽는 한이 있어도 수령이 안겨준 정치적 생명을 지킬 것 등 김일성의 혁명전사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위투쟁 조직인 ‘애국동맹’도 7개항의 강령과 선서문을 통해, ‘한민전’의 노선과 정책을 절대적인 지침으로 삼을 것, 주체의 혁명가로서 정치·사상적 각오를 드높일 것, 김일성·김정일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위임할 것 등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을 명시했다.

4) ‘중부지역당’의 목표 및 활동

■ ‘1995년 적화통일’목표

‘중부지역당’은 이선실의 지휘 하에 당시 북한의 ‘1995년 적화통일 실현’이란 목표를 세우고 공단 및 사무직 근로자들을 포섭하여 무장 세력화시키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자 계급을 “남한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 영도계급 또는 혁명주력부대의 핵심계급”으로 규정했다. 인천·포항·울산·마산·창원 등 주요 공단지역과 강원도 태백 등 탄광지역을 대남혁명 거점지역으로 설정하고 이들 지역에서 투쟁을 이끌어 나갈 핵심인물을 포섭시킬 계획도 세웠다.

■ 주사파 핵심인자 포섭

총책 황인오는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국내로 들어온 즉시 ‘구국학생연맹’출신인 동생 황인욱을 포섭하여 ‘중부지역당’에 입당시켰다. 또한 주사파 핵심 241명으로 구성된 지하조직 ‘1995년 위원회’의 총책 최호경을 포섭하여 ‘중부지역당’에 입당시키는 한편, 최호경을 통해 김일성주의 추종분자 12명을 포섭하여 비밀아지트에서 황인욱이 제작한 중부지역 당기(旗)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걸어놓고 입당식을 거행했다.

■ 학원, 노동, 언론, 문화계 조직원 침투

1991년 8월 총책 황인오는 ‘1995년 위원회’를 조직적으로 정비하면서 위원회 조직원 양홍관, 이경섭, 이철우 등을 ‘중부지역당’에 가입시켰다. 또한 ‘1995년 위원회’를 ‘애국동맹’이라는 조직으로 체제를 개편, 전환한 후 ‘중부지역당’ 강원도당 산하조직으로 편성했다.

‘애국동맹’ 산하에 투쟁동맹 조직을 결성하고, 조직원의 학원, 노동, 언론, 문화계 침투를 시도하였다. 기독교계 운동조직으로 ‘김창준 돌격소조’, 청년학생운동 조식으로 ‘8·28 학생동맹’, 노동운동 조직으로 ‘5·1노동동맹’, 농민운동 조직으로 ‘11·11동맹’, 지역·분야별 조직 부문대오 등을 두었다.

‘김창준 돌격소조’는 소조책 우○○는 성남 및 구로 등지의 전도사와 접촉, 포섭을 시도하였고, 국방부 ○○○부대 근무 경력이 있는 친구 조○○를 통해 부대기능 및 임무·위치 등을 파악하여 최호경에게 보고했다.

‘5·1 노동동맹’은 강원도당 위원장 이경섭이 조직원 조○○에게 노동자들을 의식화·조직화하기 위한 혁명지휘 대오를 구축토록 지시하여 결성했다. ‘5·1 노동동맹’은 산하에 야학 활동을 주도하는 ‘오중화 돌격소조’, 사무직 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한 ‘최인걸 돌격소조’, 군사이론 연구 및 유사시 무기 탈취를 위한 ‘박경학 돌격소조’, 중견 간부를 지도성원으로 육성하는 ‘예비소조’등을 공장 밀집 지역, 학생 및 농민운동이 활발한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했다.

소조 구성원들은 1995년 적화통일 실현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여 ‘혁명의 선봉대’로 양성됐다. 실제로 노동자 교양 및 대중적 토대 구축을 위해 ‘야학발전실천협의회’를 만들었고 ‘어중화 돌격소조’, ‘한국투자신탁’ 노조위원장 선거 개입 및 ‘민주사무직 노동자 준비위’에 조직원을 침투시켰다. (최인걸 돌격소조)

‘8·28 학생동맹’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NL계 학생운동 조직에 침투, 연계활동을 시도했다. 지도책 심○○(당시 고려대 통계학과 재학)를 비롯, 서○○(고려대 통계), 오○○(고려대 수학) 등 소조원 6명이 ‘한별 청년회’라는 조직을 결성해 세력을 규합했는데, <전대협>과 같이 전국적 차원의 조직으로 발전시킬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1·11 농민동맹’은 농민을 투쟁의 주력부대로 발전시키기 위해 구축한 비합법조직으로 강원도지역 농민운동을 지휘하는 것을 임무로 활동하였다. 부문대오는 언론·산업선교회·문화예술·구로 지역·성남 지역 등 분야별, 지역별 담당을 두어 세력을 확산시켰으며, 특히 월간 『말』지 기자 최○○가 ‘주·월간 전문기자회’에 조직부장으로 가입, 협회 장악을 시도했다.

■ 북한지령 수수 및 대북보고

황인오는 1990년 10월 밀입북하여 간첩 권중현으로부터 지령 수신, 암호해독 방법, 무전기 사용법 등 간첩통신 교육과 무전기, 송수신용 난수표, 암호표, 약어표, 등 공작 장비를 받았다. 호출부호 13개를 부여받는 한편, 약어표 등 공작 장비를 받았다. 호출부호 13개를 부여받는 한편, 매월 4회 평양방송의 A-3 방송을 통해 ‘적기가’가 방송된 다음 지령을 수신하고, 매월 4회 대북 무전보고를 하도록 지시받았다. 지시받은 대로 1990년 10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자기 집·여관·자취방 등지에서 총 41회에 걸쳐 북한의 방송 지령을 수수하였으며, 1990년 11월에서 1992년 9월까지 집 옥상 및 안성 이죽 야산, 의정부 수락산, 팔당 부근 등지에서 19회에 걸쳐 공작활동사항을 대북 무전 보고하였다.

■ 군사기밀 수집

황인오의 동생 황인욱은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사건 당시 함께 활동한 신민당 이상수 의원의 개인비서 이근희로부터 당시 민자당 계파 내분 관련 메모(이근희 직접 작성)와 ‘1992년도 국방예산(안) 개요’ 복사본(34쪽)을 제공받았다. ‘1992년도 국방예산(안) 개요’에는 정부 재정 및 국방예산 규모, 예산사안별 편성개요 등 주요 군사기밀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고, 황이오는 이 자료를 사진 촬영하여 1992년 1월에 북한에 보고했다.

조직원 고○○는 군복무 시 입수한 『대간첩수사 요령』(40쪽)과 『보안사 77년도 수사지침』(80쪽) 책자를 제공받고 조직보위수칙 작성 등에 활용하였다.

위 책자에는 침투간첩 식별·행동요령과 미행·체포·신문요령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또한 조직원 조덕원은 상부 조직원 이경섭의 지시로 ‘한민전’의 합법·비합법 자료를 수집하던 중 주한미군 핵보유 및 핵 기지 실태 등이 수록되어 있는 ‘한반도 핵문제 백서 부록’ 내용을 수집하여 이를 디스켓에 담아 이○○에게 보고하였다.

■ 김일성·김정일 찬양 유인물 제작, 배포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신속·광범위하게 전파한다는 목표 아래 북한의 ‘구국의 소리’방송 청취팀을 운영하면서 1990년 10월에서 1992년 1월까지 ‘백두산이란 이름의 전단을 제작하여 대학가·노동 현장 등에 배포했다.

1992년 4월부터는 총선 등 특정 시기에 맞춰 선전·선동 문건을 제작, 유포하는 한편 『새날의 주인』,『구국전선』등 제하의 당(黨) 정치신문을 제작·배포했다.

황인오는 조직원들로 하여금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의 50회 생신을 맞아 드리는 충성의 편지‘를 작성토록 하여 대학가 및 공단 지역 등에 유포시키는가 하면, 김일성에 대한 1992년도 신년 정성품(선물)으로 ‘수령님께 바치는 노래’와 김정일 생일축하 선물로 ‘지도자 동지 생신에 바칩니다’라는 이름의 찬양가를 만들어 在日 거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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