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노동자
계급투쟁동맹(혁노맹) 사건

1986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혁노맹)은 1986년 8월에 결성된 사회주의 혁명 조직으로 이른바 혁명군대의 무장봉기를 통한 파쇼국가 타도 및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혁노맹의 전신은 1986년 조직되었다 와해된 제헌의회(CA그룹)이었다. 혁노맹의 주요 조직원들은 1990년 8월 공안당국에 의해 대거 검거됐다.

관련정보

사건설명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혁노맹, 이적단체)은 1986년 8월 결성됐다. ‘혁명의불꽃’(1987년 3월~1989년 4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노동자동맹’(1989년 4월~1989년 8월) 등으로 조직명을 바꾸어 활동하다 1989년 8월 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으로 조직명이 변경됐다.

‘혁노맹’은 주로 각 대학과 공장지역인 안산 및 안양에 아지트를 구축한 후 ▲프롤레타리아 지하노동당 결성 ▲무장봉기(武裝蜂起)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군대 창설 ▲민주주의 민중공화국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제적 지원 하에 사회주의(社會主義)·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 건설 ▲연공(連共)통일 실현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활동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선전과 레닌의 군사론에 입각한 무장투쟁 지도 등을 목적으로 기관지인 <혁명의불꽃>(1-10호), <불꽃>(1~2호) 등을 정기적으로 제작 전국 각 지역에 배포한 바 있으며, 1989년 4월~1990년 8월간 성대, 외대, 충남대, 과기대, 영남대 등 전국 12개 대학에 하부조직인 ‘민학투련’을 결성, 각종 학내외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면서 연계투쟁을 선동했다.

이들은 실제적 물리력이 없는 민중의 역량만으로 결정적 시기에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직 내에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를 설치, 무장봉기 시 진압군대와 경찰에 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혁명군대(革命軍隊) 창설을 추진했다.

혁명군대는 파업자위대, 정당방위대, 군내에서 활동 중인 현역군인 등으로 조직했다. 혁명군대의 준비사업으로는 ▲각 지역에 있는 군부대·경찰서·예비군 본부 등의 병력 및 무기고 등을 탐지하고 탈취계획을 수립할 것 ▲각종 무기와 탄약·폭발물을 가능한 한 최대한 획득하고 비축할 것 ▲중화기 및 개인화기를 포함한 자체무장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 ▲시가전에 유리한 건물과 지형을 탐사하고 지상훈련 또는 도상훈련을 통해 전술을 능숙하게 체득할 것 ▲봉기가 시작될 때 즉시 장악해야 할 신문사·방송국·은행·관공서 등에 종사하는 연고자와 연락망을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이에 대한 탐지 및 정찰사업을 할 것,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이동선(移動線)을 파악하고 교량, 도로망과 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교두보가 되는 지점에 대한 상세한 탐지와 전술계획을 수립할 것 등을 설정했다.

이들은 무장봉기 시 군사행동(軍事行動)으로서 ▲군대·경찰 등에 대한 물리적 타격을 통하여 現체제를 붕괴시켜 나갈 것 ▲피검자의 석방, 가능한 방법을 통한 정부화폐의 몰수 ▲자유총연맹·해병전우회 등 우익(右翼)단체에 대한 테러 ▲상징적 인물에 대한 테러 및 암살 등을 설정했다. 이들은 또 혁명군대의 세부적인 활동지침으로서 ▲테러 및 정부화폐의 몰수 등은 소수 정예군을 조직, 빨치산 투쟁의 형태로 수행할 것을 계획했다.

혁명군대 건설통한 무장봉기 주장

혁노맹의 기관지로 1989년 9월7일 발간된 <불꽃> 창간호에는 이 조직의 이념과 노선이 집약되어 있다. <불꽃> 편집국은 창간호 ‘선언’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전위당(前衛黨)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실제해결의 과제로 두고 이를 즉각 개시해야 하며,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은 직업적 혁명가의 전위조직으로 출범시켰다”고 밝혔다.

그리고 기관지 <불꽃>은 단순한 정치신문이 아니라 “당건설의 무기로서의 전국적 정치신문의 위상을 띠고 발간된다”고 선언했다. 단체는 창건대회 선언문을 통해 현 시기를 “양대 계급 진영의 대격돌이 시시각각 임하여 오는 ‘혁명적 정세의 최후의 시기’라고 주장하고 ‘임시혁명정부’와 ‘무장봉기의 실제 기술적 준비’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혁노맹 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혁노맹은 대중조직이 아니며 즉각적인 전위당(前衛黨) 건설을 목표로 하는 혁명조직이었다. 혁노맹은 <불꽃>에서 “독자적 군사행동과 대중에 대한 군사적 지도를 기본 임무로 하는 혁명군대 건설을 위한 사업에 즉각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의 정세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술적 결의-I>이라는 제하의 주장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론적-실천적 군사사업을 제시했다.

▲군사과학의 연구․군사문제의 습득(군사상의 약술에 대한 책자분석, 토론, 광주봉개의 과정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분석, 남한 파쇼군대에서 발간한 약술문서 등등)
▲중화기-개인화기를 포함한 자체 무장을 모든 수단을 통해 갖출 것
▲봉기가 시작될 때 즉시 장악해야 할 여러 기관에 종사하는 연고자와의 연락망을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에 대한 탐지-정찰사업을 할 것
▲파쇼국가의 군대-경찰 등에 대한 물리적 타격을 통해 파쇼국가를 붕괴시켜 나갈 것

<불꽃>은 이밖에도 군사행동을 위한 여러 가지 실천사업을 제안했다.

일례로 1989년 11월에는 혁노맹 명의로 “파쇼도당의 군대-전경을 실질적 힘으로 파괴할 수 있도록 현재 조직되어 있는 정당방위대, 선봉대, 결사대 등을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갖춘 혁명군대로 재조직해 가자’면서 선전-선동 유인물을 살포하기도 했다.

이처럼 혁노맹은 기본적으로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으며, 1989년 당시를 봉기가 임박한 정세로 보고 혁명군의 의식적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혁노맹 관련자들도 자신들이 무장봉기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사건 관련 인물

△박대호(서울대 국사3 제적) △노성철(연대 정외 졸) △한승권(서울대 경제 졸) △임찬수(외대 정외4 제적) △이우일(성대 경영4 휴학) △정헌(외대 독어3 휴학) △김영주(충남대 의류 졸) △홍성원(국민대 중문3 휴학) △권성형(24) △김종훈(충남대 농생물3 제적) △김준강(한성대 경제4 휴학) △전명숙(외대 영어교육4) △최홍묵(충남대 무역졸) △김기향(충남대 대학원 독문) △김연희(충남대 불문 졸) △이명희(충남대 미술4) △조재은(외대 화란어 휴학) △신승근(외대 정외4 휴학ㆍ육군 1군단) △이한준(외대 영어3 휴학ㆍ 육군 61항공단) △이동구(충남대 자원공학ㆍ육군 5사단) △남현우(22ㆍ충남대 법학3 휴학ㆍ육군 2공병여단) △김선환(충남대 농공2 휴학ㆍ육군 32사단) △양성호(충남대 졸ㆍ육군 32사단) △강근욱(충남대 조공3 휴학ㆍ육군 32사단) △정현호(외대 법학3 휴학ㆍ육군 35사단) △김용태(외대 도서관학2 휴학ㆍ공군 10비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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