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빨치산 추모제

2007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 ‘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소위 ‘열사(烈士)’라는 이름으로 간첩·빨치산 출신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엔 22명의 국회의원들이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

사건설명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국회의원 22명이 추모위원으로 참여한 ‘간첩·빨치산’ 추모행사가 열렸다. 좌파연합체인 한국진보연대 등은 2007년 10월13일 오후 5시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사(烈士)의 정신으로 일어서라! 민중이여!’라는 구호 아래 ‘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개최했다.

공식자료집에 따르면, 이날 행사는 한나라당 배일도, 원희룡 의원을 비롯해 강기갑, 강창일, 권영길, 김원웅, 김희선, 노회찬, 단병호, 문병호, 심상정, 오영식, 우상호, 이기우, 이목희, 이상민, 이영순, 이인영, 정청래,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등 국회의원 22명이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 국회의원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 원희룡, 배일도 의원과 통화해 본 결과, 원희룡 의원은 “민주화운동 관련 팩스가 여러 차례 왔던 것 같기는 한데, 이런 행사에 이름을 넣으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간첩·빨치산 출신들을 추모하는 행사임을 알았다면 수락했을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배일도 의원은 “추모대상에 간첩이나 빨치산 출신들이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나는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첩 활동을 “통일조국 사업 위해 남한 파견”으로 미화

이날 행사 추모대상에는 남파(南派)간첩 출신 금재성·김도한·김남식·신창길·왕영안·윤용기·진태윤·최백근·최남규·최인정, 빨치산 출신 권양섭·김광길·김병인·김용성·김현순·류낙진·박판수·손윤규·안상운·윤기남·장광명·정대철·정순덕·주명순 등 다수의 공산혁명기도자들이 포함됐다. 행사장 전시물은 남파간첩 출신과 빨치산 출신들을 가리켜 ‘동지’와 ‘열사’로 호칭하며, 각각 ‘통일조국을 위한 사업을 위해 남한에 파견’, ‘조국통일투쟁에 전념하시다’ 등으로 미화하고 있었다.

간첩·빨치산 출신들 이외에도 1979년 검거된 공산혁명 조직 ‘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남민전)’의 주범 이재문, 신향식, 1968년 검거된 조선로동당 지하당 ‘통일혁명당(통혁당)’ 간부로서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던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등 간첩전력자들도 추모대상에 들어가 있었다. 수령영생론(영생론) 등 김일성주의를 퍼뜨려 왔던 김남식이나 범민련남측본부에서 이적(利敵)활동을 벌여 온 신창균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던 反국가행위자들은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反통일 세력 이 땅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투쟁할 것”

이날 행사는 오후 3시 시청 앞에서 집회를 마친 좌파단체 회원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앞선 집회에서 10·4선언 실천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었다. 추모제는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오종렬(舊 전국연합 상임의장)의 대회사로 시작됐다. 오 씨는 “자주평등 평화통일 민중해방 세상은 열사(烈士)의 꿈이자 살아있는 우리의 꿈”이라며 “민족을 목 조르는 한미동맹을 해체할 것”, “멸망의 재앙덩어리 전쟁기지를 없애버릴 것”, “생존과 번영의 6·15선언을 이행해 자주통일·민중해방을 앞당길 것”을 주장했다.

행사는 ‘섬뜩한’ 결의문 채택으로 마무리됐다. 결의문은 “열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신의 목숨을 민중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동체 속에 자신을 던지셨다”며 간첩·빨치산 출신을 미화하면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해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철수를 반드시 이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냉전적 법·제도를 즉각 폐지시키길 것”과 함께 “냉전수구세력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려 보내야 할 것”, “反민주·反민중·反통일적 세력이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투쟁할 것” 등을 결의했다.

추모제가 진행됐던 소위 ‘민족민주열사’들의 구체적 면면은 좌파단체의 발간책자와 인터넷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쓰여지지 않은 역사(김민희 著)》, 《감옥에서 죽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이력서(1992년 3월 월간 <말>지 민가협 권낙기 著)》, 《인민군 종군기자 수기 이인모(월간 말지 刊)》 및 2006년 1월 소위 ‘파쇼독재 잔당들과 후예들에 대한 매장, 처벌, 처형’을 주장하며 북한이 보내 온 《비전향장기수 공동고소장》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소위 ‘민족민주열사’들 중 간첩·빨치산 출신들은 검거 후 전향을 거부하다 옥사 또는 출소 뒤 지병(持病)으로 사망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29년을 복역한 뒤 1995년 사망한 빨치산 출신 윤기남은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영화 ‘송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과 조국에 대한 임무를 마무리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나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조국의 젊은이들이 승리해줄 것을 바랍니다. 끝까지 굳게굳게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최후까지 그날까지 나아가겠습니다.”

소위 ‘민족민주열사’ 중 간첩·빨치산 출신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최남규
19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된 후 1973년 출소했다. 출소 후 3년 간활을 하다 1975년 7월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돼 89년 풀려났다. 그는 출소 직전인 1989년 5월11일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쓴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가고픈 내 고향에 가고파도 내 못가네. 광복된 이 조국에 38선 웬 말인가 이 땅 뉘 땅인데 주인행세 누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짓밟질랑 말고서 돌아가라, 사라져라, 어서 꺼져버려라. 고-홈 고-홈 양키 고 홈.”
1999년 사망한 최남규는 스스로 “백두산 장군(김정일)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류낙진
6·25 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1957년 가석방된 후 1963년 ‘혁신정당’ 사건, 1971년 ‘호남통혁당재건위’ 사건, 1994년 ‘구국전위’ 사건, 2002년 빨치산위령비 비문(碑文)작성 사건으로 거듭 처벌받는 등 2005년 사망 시까지 대한민국 파괴활동에 매진해왔다. 이 중 구국전위는 ‘조선노동당’의 남한 지하당으로서 창립선언문과 강령 및 규약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조직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류낙진은 이적단체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그의 가족들은 부의금 5000만 원을 통일운동에 써달라며 범민련 남측본부에 기탁했다. 류낙진은 영화배우 문근영의 외조부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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