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인권을 내세우나 북한인권법 제정엔 반대

이념성향

단체설명

인권운동사랑방(이하 인운방)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했던 단체이다.

북한주민들의 인권유린 외면

‘인운방’은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리던 2005년 12월8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북한인권법’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인권을 빌미삼아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북에 대해서도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권관에 따라 인권을 증진하도록 국제사회는 독려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체는 또 “자본주의 체제는 인권 보장 체계이고, 사회주의 체제는 反인권적 체제라는 것은 사실 미신에 가까운 터무니없는 ‘신념’일 뿐”이라며 “어느 사회든지 해당 사회의 인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체제를 결정하고 운영할 권리는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는 권리”라고 했다.

‘사회주의자’ 자처한 서준식 前 대표

‘인운방’ 대표를 지낸 서준식은 1971년 ‘형제 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돼 17년을 복역한 적이 있다. 그는 1968년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형 서승과 함께 불법 訪北(방북)했다. 두 사람은 국군 보안사령부에 체포돼 1972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서준식은 1978년 출소한 뒤에도 사상 전향을 거부해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호감호 처분이 결정돼 10년을 더 복역했다(출처: 2008년 8월26일字 〈통일뉴스〉 보도).

1988년 석방된 그는 이듬해 출범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의장과 민주주의민족민족통일전국연합(한국진보연대 前身) 인권위원장을 역임했다. 특히 1994년 불교인권위가 시상하는 불교인권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이 단체는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에게도 같은 상을 수여했었다.

그는 2003년 발간된 자신의 著書(저서) 《서준식의 옥중서한》(야간비행刊)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칭했다. 서준식은 이 책에서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는 이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나의 행동 또한 병든 사회의 광기에 맞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믿고 싶다”고 記述(기술)했다.

不法 시위 주도한 박래군은 NCCK 인권상 수상

단체의 상임활동가로 활동했던 박래군(現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냈다. 용산방화사건은 2009년 1월 전국철거민연합의 불법 농성 도중 경찰이 진입하자 시위대가 불을 질러 5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2011년 1월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숙연)는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일반교통방해 등)로 기소된 박래군·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에게 각각 징역 3년 1월에 집행유예 4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집회시위로 인해 집단적 폭력과 손괴가 명백하다는 것이 예상되었고 이를 알면서도 범대위는 별다른 조치, 노력을 취하지 않았으며 집회 종료 후 진행된 가두시위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명백히 손해를 끼쳤다”고 밝혔다. 박래군은 2009년 1월, 용산방화사건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했다. 이들은 10차례나 未(미)신고집회를 개최하면서 車路(차로)를 점거하고 경찰관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같은 해 1월21일부터 10월까지 71회에 걸쳐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이명박 규탄 및 희생자 추모대회’를 열었다. 박래군은 경찰 수배를 받다가 2010년 1월, 자진출두했다.

2009년 12월7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는 수배 중이던 그를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하기도 했다.

연락처

전화번호

  • 02-365-5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