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학생 左派조직…美軍철수 주장하며 극렬 反美투쟁

이념성향

단체설명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은 대표적인 대학생 左派조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등을 주장해 1998년 7월28일 利敵(이적)단체(대법원 98도1395)로 판시됐다. 利敵단체로 판시되었음에도 다수의 좌파단체들은 한총련을 비호하거나 합법화를 주장했다.

현재 한총련은 조직이 유지는 되고 있으나 利敵단체 판시, 홈페이지폐쇄 등 사실상 활동이 거의 없으며 한대련(注: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 그 命脈(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결성 배경

한총련은 1993년 4월25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창립식을 가졌다. 당시 전국 180여 개 대학 총학생회장 등 6000여 명의 대학생이 모인 대규모 행사였다. 당시 1기 의장으로 선출된 김재용은 “1995년을 통일 완수의 해로 정해 남북 대학생들의 자주적 교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발언출처: 2006년 5월11일字 〈조인스닷컴〉 보도). 한총련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後身(후신)으로 결성되었다. 결성 당시 〈한겨레신문〉 보도(1993년 4월25일字)에 따르면, “한총련이 내세운 구호는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로서 이른바 ‘자주적 학생회’의 구성”이라며 “과거 전대협이 물리력에 의존한 정치투쟁에 치우침으로써 학생들로부터 소외됐다는 반성에서 나온 자기 변신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김일성 찬양 낙서와 유인물 발견

한총련이 利敵단체로 판시된 계기는 1996년 여름 연세대에서 열린 소위 ‘통일대축전’ 행사였다.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같은 해 8월12일부터 20일 연세대 내 종합관과 과학관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며 폭력을 행사했다. 사후 농성 장소에선 김일성을 찬양하는 낙서와 유인물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총련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김일성선전 지침서〉에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조국해방전쟁, 사회주의 복구시기,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였던 외교전 등의 위엄스런 업적에 대해 선전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김일성이 일으킨 6·25에 대해 “통일을 위한 미국과 한민족의 전쟁이므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적었다.

利敵性에 대한 근거

2003년 5월13일, 대법원은 판결문(2003도604)에서 제10기 한총련의 利敵性(이적성)에 대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총련 의장이 소지하고 있던 북한의 대남혁명전위대 ‘한국민족민주전선’의 문건, 김정일 연설내용 발췌문, 노동신문 사설 등이 간부의 의식화 및 사상 교육자료로 사용되고 투쟁노선의 설정 및 행동지침 마련에 참고된 점.
▲한총련 임원들이 이적단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범민련),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범청학련)의 주된 구성원으로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산하단체인 범청학련 북측본부와 지속적 통신연락을 취하며 활동해온 점.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김정일 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에서 인용한 ‘결사옹위’라는 문구를 가로 114cm, 세로 89cm의 흰천에 혈서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한 뒤, 한총련 의장이 이를 소지하고 다니는 등 북한을 추종해온 점 등.〉

대법원 제1부는 2004년 8월30일 제10기 한총련 정기 대의원대회 자료집에도 利敵性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강령 및 규약의 일부 변경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투쟁목표에 있어서 종전의 한총련과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그 지향하는 노선이 反국가단체인 북한의 통일노선과 그 궤를 같이 함” 이라고 판단했다(대법원 2004도3212가).

利敵단체로 판시된 후에도 한총련은, 북한정권의 행태를 옹호했다. 한총련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2006년 7월20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조국통일을 앞당긴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한총련은 反美를 앞세운 場外(장외)투쟁에도 적극 나섰다. 2003년 8월7일에는 한총련 소속 12명의 학생들이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의 국내훈련에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경기도 포천군 美軍 영평종합사격훈련장에 기습 진입했다. 이들은 부대 안 50m 지점까지 진입, 성조기를 불태운 뒤 막사 인근에 있던 M-2 브래들리 보병전투 차량 1대에 올라가 ‘한반도 전쟁 반대’, ‘미군 철수’ 등의 구호 등을 외쳤다. 美 2사단 소속 병사 100여 명에 의해 부대 밖으로 쫓겨난 뒤 이날 오후 경찰에 전원 연행됐다.

미군기지 습격 ‘주한미군 철수’ 극렬 투쟁

2003년 7월25일, 한총련 소속 대학생 5명은 서울 을지로5가 주한미군 극동공병단기지에 진입, 기습시위를 벌이다 基地(기지) 내에 게양된 성조기를 내린 뒤 불을 붙이는 등 國旗(국기)를 훼손했다. 同年 9월5일, 서울지법 형사12단독(판사 천대엽)은 주한미군 공병단기지에 침입해 성조기를 게양대에서 내려 불태운 혐의(외국국기모독 등)로 구속기소된 한총련 소속 대학생 류 모 씨에 징역 장기 10월, 단기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류 씨와 함께 미군부대에 들어가 불법시위를 벌인 혐의(건조물 침입 등)로 구속기소된 대학생 서 모 씨 등 4명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씩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외국 군부대에 침입, 국기게양대에 걸린 외국 국기를 끌어내려 태운 행위는 그 국가 국민의 자긍심을 침해할 뿐 아니라 우리 정부의 외교적 활동 및 그 국가와 의 선린관계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어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며 실형선고 이유를 밝혔다(발언출처: 2003년 9월5일字 인터넷 〈경향신문〉 보도).

맥아더 동상 철거 시도

2005년 9월11일에는 통일연대 등이 주최한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에도 참여했다. 한총련을 비롯한 단체 회원들은 인천 자유공원 內 맥아더 동상을 둘러싸는 ‘인간띠 잇기’ 행사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이 제지에 나섰다. 그러자 이들은 쇠파이프와 2~3m 길이의 대나무를 경찰을 향해 휘두르고 달걀 수십 개를 던졌다. 시위대가 흙까지 뿌리자 경찰은 방패와 곤봉, 소화기를 뿌리며 맞서는 등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출처: 2005년 9월11일字 〈조선닷컴〉 보도 인용).

北, 한총련을 ‘애국통일단체’로 격찬

북한정권은 한총련을 ‘애국통일단체’로 격찬해왔다. 예컨대 2008년 5월17일字 〈노동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한총련을 비롯한 애국적인 통일운동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탄압책동을 요란하게 벌려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9년 5월5일 범민련 북측본부는 “리명박 패당은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악랄하게 탄압했던 과거 파쑈 독재정권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2년 7월12일字 北 기관지 〈조선신보〉는 “‘한총련’을 비롯한 진보적인 단체들을 북과 련대하여 통일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터무니없는 ‘리적단체’의 루명을 씌워 탄압하고 있다”며 한총련을 옹호했다.

홈페이지 폐쇄

2011년 7월26일에는 한총련 홈페이지까지 폐쇄되었다. 경찰청 보안국은 “‘선군 태양 김정일 장군’ 등 5417건의 이적 문건이 게시된 한총련 홈페이지를 지난 6월23일 방송통신위원회에 폐쇄 요청한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달 26일 폐쇄했다”고 밝혔다. 한총련 홈페이지의 폐쇄는 2010년 7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남측본부’ 홈페이지 폐쇄 이후 두 번째였다. 경찰은 “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적 문건이 누리꾼에게 그대로 전파되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하거나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돼 폐쇄하게 됐다”면서 “홈페이지 관리자나 운영자가 명확하지 않아 누가 친북 성향의 글을 올렸는지 조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발언출처: 2011년 8월26일字 인터넷 〈서울신문〉 보도).

‘한총련 출신 국회의원’ 통진당 김재연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비례대표 의원은 한총련 출신이다. 그는 한국외대 총학생회장(2002년 10기)을 지냈다. 2012년 4월10일字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학교 안에서 3년 간 수배자 생활을 했다”며 “‘한총련 탈퇴서’를 쓰지 않을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자가 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한총련은 잘못한 것이 없는 단체라고 판단했다. 그 단체를 통해서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던 2002년, 10기 한총련 의장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고, 김형주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김재연은 한총련 내 계파 중에서 ‘혁신그룹’으로 분류되었고, 김형주는 ‘단결그룹’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후 ‘혁신그룹’은 한총련을 수권하려는 노력을 계속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혁신그룹’은 제도권 정당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민노당) 학생위원회와 결합했다. 그 즈음 한총련이 약화되고 학생운동 주도세력이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으로 전환되었다. 한대련은 한총련의 後身격으로 현재 약 20여 개의 대학 총학생회가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혁신그룹은 2007년 경 한대련에 집중해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주요직을 장악했고, 한대련 가입을 확장시키는 운동에 나섰다. 이후 김재연은 한대련 산하조직 서울지역대학생연합(서대련) 집행간부를, 2011년 7기 한대련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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