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진보연대

전국연합 이은 국내 左派단체들의 회의체

이념성향

단체설명

한국진보연대(이하 진보연대)는 左派단체의 회의체이다. 좌파는 진보연대를 ‘單一(단일)전선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진보연대 노선이 참가단체 및 참관단체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진보연대의 前身(전신)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으로, 2008년 2월, 소위 ‘발전적 解消(해소, 注: 해체)’됐다. 2008년 2월23일字 〈통일뉴스〉는 전국연합의 해체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날 해산 결의는 내적으로는 ‘전국연합은 단일전선체 본조직이 결성되면,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전국연합 해산을 결의한다’는 지난 15기 대의원대회(2006년 3월11일) 결의에 따른 것이며, 외적으로는 지난해 9월16일 ‘진보진영의 단일전선체’를 지향하는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한 조건을 고려한 것이다〉

전국연합은 1991년 출범 이래 ‘남북연방제’를 비롯해 국보법 철폐·주한미군 철수, 6·15공동선언 2항의 실현인 ‘낮은단계연방제’ 구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후 1민족1국가2제도2체제의 ‘연방통일조국건설’을 지향했었다. 이들은 NL(민족해방) 계열로 분류되었다.

‘군자산의 약속’

이들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 보람원수련원에서 이른바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를 가졌다. 전국연합은 여기서 소위 ‘9월 테제’(군자산의 약속)를 채택했다. ‘9월 테제’는 6·15선언에 명시된 ‘낮은단계연방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낮은단계연방제’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철폐로 남북 連帶(연대)·聯合(연합) 합법화 ▲남북 諸(제)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민족통일기구 구성에 기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NL 계열 다수 민노당 입당

‘9월 테제’ 이후 이들은 기존의 운동권 노선을 탈피하고 점차 정당정치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9월 테제’는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이론에만 교조적으로 매달려 운동진영 내부에 분파만 조성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전국연합의 NL 계열 중 다수가 PD(People Democracy·민중민주) 계열이 창당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 입당했다. 그중 경기동부연합은 대학생 당원을 대거 조직하면서 민노당 내의 다수세력으로 부상했다. 경기동부연합은 2012년 통합진보당 不正경선 파동 당시 통진당 당권파의 핵심 조직으로 알려졌는데, 이 경기동부연합이 바로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이었다(출처: 전국연합 10기 대의원 자료).

RO와 진보연대

2013년 9월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의원의 ‘체포동의서’에는 경기동부연합의 이름을 비롯해 한국진보연대의 이름도 등장한다.

〈RO는 조직결성 이후 ‘전국연합’ 내 경기동부연합의 중추세력을 형성하였고, 2008년 2월 경 ‘전국연합’을 대체하는 ‘한국진보연대’가 결성되자 자연스럽게 ‘경기진보연대’로 그 세력을 이전하여 핵심부를 장악하는 등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킨 조직원들을 경기지역 내 청년, 학생, 여성, 노동 관련 사회단체에 꾸준히 침투시켰다. (출처: ‘국회의원 이석기 체포동의안 요청서’, 17~18페이지)〉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이석기는 경기동부연합 관련 인사들과 관계가 있다. 2010년 12월 설립된 ‘나눔환경’의 대표 한용진은, 이석기의 한국외대 후배이자 경기동부연합 상임의장 출신이었다. 한용진은 이석기와 함께 1999년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다. 2010년 6·2지방선거 당시 김미희 민노당 후보(現 통진당 국회의원)와 정책연합을 통해 이재명 現 시장이 당선되자 성남시는 청소代行(대행)업체로 나눔환경을 선정했다.

일부에서는 ‘통진당에 대한 代價(대가) 차원에서 준 특혜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성남시는 경기동부연합의 지역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진원지로 꼽힌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모임에는 경기진보연대 고문 이상호(구속)가 있었다. 경기진보연대는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체포동의서’의 내용처럼 경기동부연합이 경기진보연대로 세력을 이전해 두 조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석기는 2012년 4월20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진보연대를 방문했습니다. 진보연대 동지들은 제 마음속의 동지들입니다”라고 쓴 적도 있다. 즉, 한국진보연대, 경기진보연대, 경기동부연합은 이석기를 중심으로 연결고리를 갖는 셈이다.

利敵단체가 포함된 한국진보연대

2013년 10월 현재 진보연대에는 통진당을 비롯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등 거의 모든 좌파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다. 참관단체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남측본부(범청학련 남측본부) 등이 있다. 이중 한총련과 범민련, 실천연대, 범청학련 남측본부 등은 법원에 의해 利敵단체로 판시된 단체들이다. 진보연대는 강령에서 주한 미군철수·국가보안법 폐지·6·15선언 이행 등을 밝히고 있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폐지, 유엔사의 해체와 작전통제권의 신속하고도 전면적인 환수, 침략적인 합동군사훈련의 폐지 등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청산하고 주한미군을 완전 철수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따른 사죄와 배상,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과 사죄배상 등 국제관계에서 잘못된 과거를 청산 ▲국가정보원, 보안수사대, 기무사 등 억압적 국가기구와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등 반민주악법, 제도를 완전 철폐한다 ▲범민련, 한총련 등 진보적 단체들에 대한 이적규정을 철회하고 그 활동을 보장하며,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고 수배해제를 위해 투쟁한다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유엔사의 해체와 외국군의 철수, 대대적인군축을 통해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 실현을 위해 투쟁한다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배격하고, 상대방의 제도와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기초위에서 통일을 실현해 나간다 ▲‘반인권 국가범죄 등 공소시효 배제에 관한 특례법’ 제정,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과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친일파 및 반민주, 반민족적 부정축재자 재산몰수 등 올바른 과거청산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한다 ▲민족민주열사 및 관련자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 예우를 국가가 보장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제반대책을 마련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며 예비군제를 폐지한다.〉

진보연대는 단체 규약에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반대하고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제반사업 ▲우리민족끼리 기치 아래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제반사업 등을 전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맥아더는 분단과 학살의 원흉, 전쟁 미치광이”

진보연대의 실체는 이 단체가 스스로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 등 3개 단체를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진보연대 출범식 보도자료는 “진보연대의 위원장단은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대표,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 3인과 민노당·전농·전빈련·전국여성연합 대표 등 7인으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민통련을 시작으로 전민련, 전국연합, 통일연대·민중연대로 이어져 온 ‘단일연합체’의 역사를 계승한다”며, ‘한반도 평화’와 ‘민중생존권 쟁취’를 기치로 내걸었다(발언출처: 2007년 9월28일字 인터넷 〈시사뉴스〉 보도).

통일연대·민중연대 역시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기’, ‘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며 전국연합과 동일노선을 걸어왔다. 통일연대와 민중연대는 전국연합과 함께 反美운동을 벌여왔는데, 2005년 9월11일 인천 맥아더 동상 파괴폭동 당시에는 ‘맥아더는 학살의 원흉, 전쟁 미치광이’라며 美軍철수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 등 3개 단체는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소위 ‘범대위’라는 기구를 구성, 反美운동을 격화시켰다. ▲매향리미군국제폭격장폐쇄범국민대책위(2001년) ▲미군장갑차故신효순·심미선살인사건범국민대책위(2002년)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을위한범국민행동(2004년) ▲빈곤을확대하는APEC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 농업의근본적회생과故전용철농민살해규탄범국대책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2005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2006년) 등 그동안 만들어진 모든 범대위의 핵심에는 이 3개 단체가 있었다.

집회 주관단체는 ‘FTA범국본’, ‘평택범대위’, ‘전용철범대위’, ‘反부시국민행동’, ‘여중생범대위’ 등 다양했지만, 주동자의 거의 대부분은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 소속이었다. 특히 오종렬 진보연대 1기 공동대표의 경우, 거의 모든 범대위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주도

2008년 5월6일, 진보연대는 참여연대 등 1000여 개의 단체와 함께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에 저항하는 범국민 긴급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를 결성했다. 대책회의 대표급으로 활동을 벌였던 강기갑, 천영세, 오종렬, 이석행, 한상렬 등은 모두 진보연대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오종렬·한상렬은 진보연대 공동대표였고, 강기갑·천영세 의원은 진보연대 참가단체인 민노당 소속이고, 이석행 역시 진보연대 참관단체 민노총 대표였다. 5월6일 출범식 사회를 맡았던 박석운은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한미FTA범국본 집행위원장(現 진보연대 공동대표)이었다. 당시 기자회견장 맨 앞자리에는 강기갑, 천영세, 오종렬, 이석행, 한상렬이 배석했다.

실무진도 마찬가지였다. 5월15일 광우병대책회의가 작성한 내부 회의문건에 따르면, 상황실 상근자 12명 중 운영위원장, 사무처장, 대변인 등 6명이 모두 진보연대 간부였다. 나머지는 참여연대가 4명, 다함께 1명, 나눔문화 1명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당시 진보연대는 광우병의 위험성을 부각하고, 촛불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온·오프라인 상의 선전을 벌였다. 진보연대가 2008년 5월4일 만든 ‘광우병 투쟁지침1’에는 다음과 같이 記述(기술)되어 있다.

〈▲가능한 전국의 모든 광역, 시군에서 촛불행사를 조직합시다. 서울지역 6일부터 매일 저녁 7시 청계광장. 광역, 시군별로 저녁 촛불행사를 진행해 주십시오 ▲지역별로 비상시국회의를 조직하고 통일된 국민행동지침을 알려나갑시다. 서울지역 5월6일 3시 비상시국회의 진행예정. 지역별로 비상시국회의에 준하는 광범위한 시민사회단체와 공동행동을 준비해 주십시오.〉

이어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서는 이렇게 외칩니다. ‘너나먹어 미친소’ ‘미친소를 청와대로’ 구호소리가 끊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우리 한국진보연대의 모든 단체와 회원들이 두 팔 걷어 붙이고 나섭시다”라고 기록돼 있다.

대부분 상습 시위 前歷

진보연대 간부들은 소위 ‘상습 시위꾼’들이다. 오종렬, 한상렬 1기 공동대표는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오종렬은 2008년 11월 구속 이후 2009년 1월 보석으로 석방됐고, 한상렬은 2008년 8월 구속 후 11월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2010년 6월 불법 방북한 혐의로 다시 구속, 3년 간 복역하고 2013년 8월 만기 출소했다. 박석운도 2009년 4월16일 탤런트 故 장자연 씨의 죽음에 〈조선일보〉의 고위 간부가 연루돼 있다며 신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명예훼손혐의로 형사고발 당한 바 있다. 박 씨는 2008년 9월 불법 촛불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된 뒤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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