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된 極左정당…‘북한식 사회주의’ 추구

이념성향

단체설명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은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 실현’을 표방하는 등 사실상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칙인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를 否定(부정)하는 정당이다.

2013년 11월5일, 법무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통진당이 민주적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통진당의 反국가성을 근거로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소위 건국이념”

법무부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통합진보당의 목적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된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최고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하여 북한의 소위 건국이념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가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이고, 소수 특권 계급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이념으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고…(중략)〉

법무부는 또 “‘민중주권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강령에 도입된 것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인된 세상’을 목표로 하여 소위 특권계층의 주권을 박탈하고 ‘일하는 사람’인 ‘민중’만이 주권을 가지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개념이므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진당 강령 前文(전문)에는 “노동자·농민·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 “민중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법무부는 이밖에도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창당 및 NL계열의 입당 과정, 강령 개정 및 3당 합당 등 과정에 북한 지령을 통해 북한과 연계되어 온 사실이 확인되어, 존치할 경우 북한과 함께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보도자료에 담긴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 요지의 全文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 금일(11월5일) 2013년도 제47회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민노총이 중심이 되어 창당되었으나,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NL계열이 입당하여 당권을 장악한 후 종북성향 논란으로 두 차례에 걸친 분당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으로, 현재는 종북성향의 순수 NL계열로 구성된상태입니다.

▲통합진보당의 목적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바,
- 최고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하여 북한의 소위 건국이념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가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이고, 소수 특권 계급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이념으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고,
- 민중주권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강령에 도입된 것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목표로 하여 소위 특권계층의 주권을 박탈하고 ‘일하는 사람’인 ‘민중’만이 주권을 가지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개념이므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의 활동 역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바,
-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추종하는 ‘강온양면’ 전술에 따라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하면 무력에 의한 혁명을 추구하고, 그 전의 준비기 동안에는 대중정당을 통한 반국가활동 등에 의하여 혁명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으며,
- 이석기 등이 관여한 RO 조직의 내란음모·선동 행위와 일심회 간첩단 사건 등 각종 反국가 활동은 위와 같은 전술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나라 체제를 파괴하려는 활동이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고,
- 국회를 ‘혁명의 교두보’, 선거를 ‘투쟁’으로 인식함에 따라 비례대표 부정경선 등으로 민주적 선거제도를 부정하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5·12 중앙위원회 집단폭력 등으로 의회주의 원칙, 정당민주주의에 반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창당 및 NL계열의 입당 과정, 강령 개정 및 3당 합당 등 과정에 북한 지령을 통해 북한과 연계되어 온 사실이 확인되어, 존치할 경우 북한과 함께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상당히 높습니다.

▲이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및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상실선고를 청구하고,
- 위헌적 활동 계속으로 인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침해를 방지할급박한 필요성에 따라 정당보조금 수령을 비롯한 각종 정당활동정지 가처분도 신청하였습니다.〉

민노-통진당 略史

통진당의 역사는 前身격인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서부터 시작된다. 민노당은, 민노총을 기반으로 출범했던 국민승리21(대표 권영길)이 1999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NL(National Liberty·민족해방)과 PD(PeopleDemocracy·민중민주)계열, 노동운동세력 등이 한데 규합해 2000년 1월 창당된 정당이다. 민노당 역시 강령에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내세웠고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 건설을 주창했다.

민노당이 제도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였다. 2000년에는 원내 진출에 실패했으나 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획득해 좌파 정당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민노당의 지역구 당선자는 권영길, 조승수이며, 비례대표 당선자는 강기갑, 노회찬 등 8명이었다. 2008년 이전까지 黨內 세력은 NL과 PD로 거의 대등하게 兩分(양분)되어 있었다. 이런 분류는 단지 운동권 내부의 노선 차이일 뿐,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NL-PD 모두 大同小異(대동소이)한 친북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민노당은 2008년 1월12일, 2007년 대선에서 저조한 득표율을 보인데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PD계열의 심상정(現정의당 국회의원) 의원을 위원장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당 혁신안이 부결되자 심상정은 2월4일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이때 NLPD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해 ‘종북 논란’이 불거졌고 PD계열 일부가 민노당을 탈당,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민노당은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과의 분당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2석, 전국구 3석을 확보했다. 민노당은 2008년 7월 강기갑을 대표로 선출해 체제를 정비했으며, 2010년 민변출신의 이정희를 중심으로 4기 지도부를 선출했다.

2011년 8월, 汎(범)좌파세력은 이듬해 치러질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승리를 위해 이른바 ‘진보대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同年 8월28일, 이정희 당시 민노당 대표와 조승수 당시 진보신당 대표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잠정 합의문’을 발표, 합당을 논의했다. 같은 해 9월4일, 진보신당은 당 대회에서 민노당과의 합당 안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재적 대의원 3분의 2를 넘지 못해 부결되었다.

진보신당 내부에서 합당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거세지자 조승수 대표를 비롯해 심상정, 노회찬이 탈당했다. 이들은 ‘새진보통합연대’를 결성해 민노당과의 합당에 나섰다. 유시민, 천호선 등 親盧(친노) 계열이 主를 이루었던 국민참여당(이하 국참당)도 ‘합당 대열’에 합류했다. 2011년 12월5일, 민노당과 새진보통합연대, 국참당은 합동수임기구를 구성했으며, 이듬해 1월15일 통합진보당이 공식 출범했다.

19대 총선 前後 불거진 不正경선 파동

통진당은 2012년 19대 총선 前後(전후)로 不正(부정)경선 파동에 휘말렸다. 통진당 不正경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정희 후보가 출마했던 관악乙 不正경선이고, 다른 하나는 비례대표 후보 不正경선이다.

통진당 이정희 후보와 민주통합당(이하 민통당) 김희철 후보는 서울 관악乙 출마 여부를 두고 競選(경선)을 벌였다. 이는 그해 3월10일 타결된 민통당-통진당의 야권연대(75페이지, ‘민주당’ 참조)에 따른 것이었다. 3월17~18일 실시된 경선은 ARS 여론조사와 임의전화걸기(RDD) 전화면접 방식으로, 이를 절반씩 나눠 진행했다. 그후 한 네티즌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이정희 후보 측 보좌관으로부터 받은 다량의 문자 내용을 공개했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해야 함’, ‘60대와 함께 40~50대도 모두 종료. 이후 그 나이대로 답하면 날아감’이라고 적혀있었다. 나이를 속여 ARS 여론조사에 답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3월20일 이정희 후보는 “제 동료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이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깊이 사과한다”며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이 문자메시지가 경선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면 재경선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김희철 후보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발언출처: 2012년 3월20일 字 〈노컷뉴스〉 보도). 야권연대 경선관리위원회는 再경선을 권고했으나 김 후보는 3월22일 민통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이정희가 후보로 선출되었다.

부정경선으로 인한 야권연대의 국민적 불신이 높아지자 左派(좌파)진영 원로들이 나서 이정희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22일 오전 국회에서 백낙청(現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명예대표), 김상근(現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등이 속한 ‘원탁회의’는 李 후보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李 후보는 23일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고, 同黨 이상규에게 후보직을 넘겼다.

계파 갈등 노출시킨 비례대표 不正경선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은, 당의 당권파(舊 민노당 계열)와 비당권파(舊 국민참여당 등 민노당 외 계열) 간의 갈등을 노출시킨 사건이다.

2012년 4월18일, 이청호 통진당 부산 금정구 공동지역위원장은 당홈페이지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며’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윤금순(1번) 후보와 오옥만(9번) 후보가 바뀐 건 현장투표였다”면서 “현장투표 형태가 엉망이었던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통진당 內에서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국민참여당系(계)였다. 그는 “제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번과 2번 당선자는 부정선거와 소스코드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30인 이상의 사업장이나 지역의 요청이 있을 시에 지역위원장도 모르는 현장투표가 있었고 ▲선거 중간에 전산투표를 관리하는 운영업체가 3번이나 소스코드를 열어 봤다고 했다. 그는 “내 정보에 의하면, 이번 비례대표투표의 전산관리를 한 업체가 민주노동당 시절에서 부터 계속 전산관리를 해 온 업체라고 한다”며 “선거하면서 전혀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10년을 넘게 민주노동당 덕에 밥 벌어 먹고 살고 왔던 업체에 이런 걸 맡길 수 있나”고 비판했다(발언출처: 2012년 4월20일字 〈참세상〉 보도).

“어느 나라에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

당시 통진당 비례대표 1번은 윤금순(전국여성농민회연합 출신), 2번은 이석기(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였다. 이청호 위원장은 온라인 투표 2위였던 노항래 후보가 2번이 아닌 10번에 배치된 것이 ‘조작된 결과’라며 윤금순 당선자와 이석기 당선자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통진당은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위원장 조준호)를 꾸려 부정경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同年 5월4일 조준호 위원장은 ‘비례대표 경선에 총체적인 부정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위가 확인한 부정선거 방식은 크게 ▲현장 대리투표 ▲뭉텅이 투표 ▲유령투표 ▲동일 아이피(IP)로 중복투표 ▲소스코드 열람 확인 등이었다.

당권파는 조사위의 이 같은 발표에 수긍하지 않았다. 이정희 前 대표는 이를 “중세의 마녀사냥”이라고 규정, “당과 동지에 대한 무고, 통합진보당의 내부로부터의 몰락, 야권연대와 진보집권의 가능성 소멸, 이것이 지금 이 사태의 본질과 현상”이라고 사실을 誤導(오도)했다(발언출처: 2012년 5월8일字 〈프레시안〉 보도). 이석기 의원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며 “진보정당은 천상의 정당이 아니다.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100%여야 한다는 건 대단히 무서운 논리”라고 사퇴 불가의 뜻을 내비쳤다(발언출처: 2012년 5월12일字 인터넷 〈한겨레〉 보도). 김선동 의원은 논란이 된 ‘뭉텅이 표(注: 현장 투표 당시 자행된 부정투표 방식)’에 대해 ‘투표용지 관리가 부실해 절취선이 잘려서 계속 넣다 보면 풀이 다시 살아나 붙는 경우가 있다’는 취지의 황당한 논리를 내세웠다(발언출처: 2012년 5월8일字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녹취록).

조준호 위원장은 5월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총체적 관리부실부정 선거라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며 “진상조사와 관련해 조사위는 공정·중립·최선을 다했고, 1차 조사에서 미흡한 점은 2차 조사로 보완해야 할 것”이라며 경선不正이 있었음을 재확인했다. 그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으며 우리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며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당권파 측 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발언출처: 2012년 5월9일字 인터넷 〈한겨레〉 보도).

중앙위원회 난투극

5월1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통진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에서 비당권파인 유시민, 조준호, 심상정 공동대표가 당권파로 추정되는 당원들로부터 주먹질과 발길질, 멱살을 잡히는 등 집단 폭행을 당했다. 이날 통진당은 중앙위에서 19대 총선 때 불거졌던 비례대표 경선 不正(부정)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비례대표 일괄 사퇴 등을 논의하려 했었다.

중앙위가 열리는 3층 그랜드볼룸 주변에는 당권파가 붙인 플래카드 50여 개로 도배됐다. 플래카드에는 ‘당원 가슴에 대못질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폐기하라’, ‘당원들의 진정한 대표, 이정희 대표님 힘내세요’, ‘노동자 망신 조준호 대표 당기위 제소’라고 적혀있었다.

심상정 대표의 사회로 중앙위가 開會(개회)되자 당권파 측 당원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은 ‘가짜 중앙위원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회의 의사 진행을 방해했다. 이들은 발언을 신청하며 ‘옛 국민참여당 몫 중앙위원 중에 갑자기 사람이 바뀌거나 추가된 경우가 있다’, ‘현장에서 중앙위원들의 신분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등의 주장을 반복했다. 심 대표는 의사 진행 방해가 계속되자 오후 4시30분쯤 停會(정회)를 선언했다. 속개된 회의가 또다시 중단되자, 심 대표는 “우리당이 이렇게 하고도 민주주의를 얘기할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오후 6시50분쯤 회의가 속개되자 수 십 명의 당권파 중앙위원과 참관인들이 회의장 앞으로 몰려나가 단상 앞을 점거했다. 심 대표가 회의를 진행하려 하자 한 당권파 측 당원은 “왜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느냐. 이게 국회에서 보던 날치기”라고 외쳤다.

심 대표가 첫 번째 안건인 ‘강령 개정안 심의·의결의 件’을 안건으로 올린 뒤 “이 건에 대한 이의가 없으면 만장일치로 안건이 통과됐음을 선언한다”고 말하자 당권파 측 당원들이 단상에 올라 회의 진행을 방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때 한 젊은 여성당원이 조준호 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유시민 대표의 안경이 날아가기도 했다(발언출처: 2012년 5월12일字 〈조선닷컴〉 보도).

셀프(self)제명

그해 7월26일 통진당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從北(종북)논란’의 핵심으로 거론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을 비당권파 주도로 상정했다. 이때 출석의원 12명 중 찬성 6표, 무효 1표, 기권 5명으로 부결됐다. 당시 中立(중립)으로 분류되었던 김제남 의원이 무효표를 던져 두 의원은 가까스로 제명을 면할 수 있었다.

9월 들어 이석기·김재연 의원과 노선을 달리하는 의원 및 당직자들의 탈당이 이어져 당은 分黨(분당)의 길로 접어들었다. 통진당은 9월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제남, 정진후, 박원석, 서기호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표결에 부쳐 의원 13명 중 찬성 7표, 기권 3표로 통과시켰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제명 대상인 비례대표 의원 4명을 포함해 총 7명이었다.

언론은 이를 ‘헌정 사상 초유의 셀프(self)제명’이라고 비판했다.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탈당을 하면 자동적으로 의원직이 박탈되지만, 제명이 되면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제명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제명된 직후 이들은 통진당을 탈당했다. 9월10일에는 강기갑 前 의원, 11일 권영길·천영세 前 대표가 탈당한 데 이어 13일엔 유시민·심상정·조준호 前 공동대표 및 노회찬 의원이 탈당했다.

2000년 민노당 창당 이래 대표(비대위원장 및 공동대표 포함)를 맡은 사람은 권영길·천영세·김혜경·문성현·강기갑·이정희 등 총 9명이었다. 이중 이정희 前 대표만 당에 잔류하고 8명이 탈당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2013년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주도한 내란음모가 당국에 적발되었다. 국정원은 2010년부터 이석기 등에 대한 內査(내사)를 벌여왔는데, 이중 이석기 주도로 만들어진 지하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실체 파악에 주력했다. 內査 도중 RO에 몸담고 있던 조직원 李 모 씨가 RO의 실체를 국정원에 제보했다. 그는 조직의 강령과 목표, 사상학습자료 등이 담긴 USB를 국정원에 제출했고, 국정원은 그의 진술이 사실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2013년 8월28일, 국정원은 이석기의 집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비롯해 10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공안당국은 이석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 57통, 도청 탐지기, 그의 집 신발장에서 5만원 권 1000장, 서재 옷장에 있는 등산가방에서 5만 원 권 820장을 압수했다. 국정원은 같은 날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과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통진당 前 수원시위원장 등 14명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2013년 9월4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재석의원 289명 가운데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 등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제헌 국회부터 이날 본회의까지 가결된 현역 의원 체포동의안 총 12건 가운데 내란음모 혐의는 이석기 의원이 사상 처음이었다. 국정원은 체포동의안 통과 직후 拘引(구인)에 나섰고, 의원회관 사무실에 머물던 이석기를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 및 경찰과 통진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공안당국의 수사결과, 이석기 등 RO조직원 130여 명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修士會(수사회) 강당 등에서 국가基幹(기간)시설 파괴와 人命殺傷(인명살상) 방안 등을 모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통신·油類(유류)시설 등의 파괴 방법을 논의했다. 이들은 KT 혜화지사와 분당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경기 평택물류기지에 대한 파괴 방법도 모의했다. KT 혜화지사는 유선전화 및 인터넷 관련 핵심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며, 분당 IDC는 KT의 인터넷 서비스와 각종 서버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평택 물류기지는 한국석유공사가 유사시를 대비해 비축해 둔 약 600만 배럴의 석유 및 액화석유가스(LPG) 저장시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같은 해 9월26일 검찰은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석기 의원은 5월 전쟁이 임박했다는 인식 아래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 폭동을 수행하기로 모의해 내란을 선동·음모했다”며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부위원장 등 3명도 비슷한 공소사실로 형법 제90조 내란음모·선동 및 국가보안법 제7조 利敵(이적)동조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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