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개념 폐지

FACTS (19)

장병들과 국민들의 대북 경계심 해이

주적(主敵) 개념은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온 뒤 1995년 국방백서에서 처음 사용됐다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삭제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발간된 ‘2008국방백서’, ‘2010국방백서’에도 주적(主敵) 표현은 부활되지 못했다. 북한 정권이 반(反)국가단체라는 헌법의 명령을 조롱, 지난 60년간 42만 건 이상 정전(停戰)협정을 위반한 실체적 위협도 덮어버린 조치였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이후 2010년까지 북한은 요인 암살, 항공기 테러, 육상과 해상 도발, 대량살상무기 발사 등 무려 42만 5000여 차례나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이중 무력도발은 470여 건으로 연 평균 8.2회 꼴로 발생했고, 이로 인해 군경, 민간인을 합쳐 4119명이 납치되거나 사망했다. 휴전 이후 북한의 큰 도발이 없었던 해는 1954년, 1956년, 1972년, 1988년, 1989년 등 단 5년에 불과하다. 연대별 주요 도발 건수를 보면 50년대 10건, 60년대 78건, 70년대 35건, 80년대 18건, 90년대 45건, 2000년대 35건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사이버 테러 등의 신종 대남도발도 발생하고 있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도발을 꾀하는 북한의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이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도 중요한 부분이다. 1960년대에는 연방제 제의 후 1·21 무장공비 및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일어났다. 1970년대에는 7·4 남북공동성명 후 땅굴을 굴착하는 한편 8·18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났다. 1980년대에는 3자회담 제의 후 미얀마에서 아웅산 폭탄테러가 일어났고, ‘민족단합 5개항’ 발표 후 얼마 안 있어 KAL858기 폭파가 일어났다. 1990년대에는 정주영 씨의 소떼 방북과 차관급 회담 제의 직후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이 일어났다. 2002년의 서해교전이 있었던 날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4강전이 있었던 날이었으며,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중 일어났다.

특히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이 있었던 2010년 이후 대한민국은 안보 공황상태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평도는 북한의 포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거주민 1400여 명은 육지로 모두 대피해야만 했다. 왜 우리 軍은 자위권을 발동하지 못하고, 왜 매번 교전규칙 탓만 하고 있는가.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주적개념 삭제는 장병들의 정신무장 약화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경계심도 해이해졌다. 이는 천안함 폭침(爆沈)을 북한의 공격으로 믿지 않은 국민이 상당수에 달한 연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