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방화 사태

FACTS (9)

철거문제를 ‘주거권’이 아닌 ‘계급적’ 시각에서 접근

2009년 1월19일 발생한 용산방화(放火) 사건은 도심테러 수준이었다.

농성자들은 남일당 건물을 불법점거한 채 대형새총을 설치했다.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는 망루와 새총을 비롯해 화염병 제조·투척, 염산 및 시너 공급 등을 주도하며 1박2일 동안 경찰은 물론 버스·승용차가 지나는 거리에 화염병을 100개 이상 투척했다. 골프공은 300여 개, 유리구슬 400여 개, 벽돌 1000여 개를 대형새총으로 발사했다. 염산병도 40개 이상 던졌고, 시너를 통째로 부었다. 마구잡이로 던진 화염병으로 인근 건물 네 곳에서 불이 났다. 경찰은 18차례나 설득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경찰특공대가 들어갔지만, 농성자들이 신나를 통째로 부어 놓은 탓에 사고가 터졌다. 결국 경찰특공대원 1명과 농성자 5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2011년 4월28일,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용산사태 당시 점거농성을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기소된 남경남 전철연 의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남씨는 2009년 1월 용산참사 사건 당시 화염병 제작과 투척을 배후에서 주도하고, 2007년 경기 용인 어정지구의 망루 농성에 관여하는 등 전철연 의장으로서 철거민의 불법 농성을 조장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었다.

전철연은 철거문제를 ‘주거권’이 아닌 ‘계급적’ 시각에서 접근해왔다. 전철연은 출범선언문에서 “전체 철거민과 도시빈민의 총단결된 힘으로, 전 민중의 생존권을 수호하여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수립하기 위해 총력 투쟁할 것을 만천하에 선언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전철연은 과격한 행태로 좌파에서도 비난받아온 조직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1998년 펴낸 <철거민이 본 철거> 및 전철연 측 자료에 따르면, 2006년까지 철거투쟁으로 숨진 35명 대부분이 전철연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전철연의 또 다른 문제점은 철거민에 대한 행태이다. 2005년 5월3일 한겨레21은 이에 대해 “벼랑으로 몰린 철거민들에게 전철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이미 비민주적 전위조직으로 퇴화해 서철협 시절의 활력을 잃은 모습이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보도내용을 일부 인용해본다.

"골리앗(철거에 대응하는 망루)은 만드는 데 드는 비용만도 10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철거민들이 카드빚을 내 그 비용을 댄다. 그가 속한 안암동에서도 2002년 2월 철거대책委가 꾸려질 때 50명이었던 주민들이 3개월 만에 20명대로 줄어들었다.
전철연의 투쟁 방침을 성실하게 따르다 보면, 생계를 포기한 주민들은 수천만 원씩 빚이 쌓이고 곳곳에서 휘두른 폭력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투쟁에 더 매몰될 수밖에 없고, 점점 전철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협상이 잘 끝나면 살 집과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민사상의 고소·고발 사건이 모두 유야무야된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얻어낸 게 없는 상황에서 철대위에서 쫓겨나면, 철거민들은 수 천 만원의 빚을 떠안은 채 범죄자로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 그 와중에 사람이 죽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