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李鍾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누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는지 모른다

    (2011)

발언록

누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는지 모른다

솔직히 나는 누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는지 모른다. 다만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문제는 묵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킬 의지가 있다는 판단과 침몰시켰다는 사실관계를 증명하는데 있다. '북이 그럴 수 있다'가 곧바로 '북이 그랬다'로 갈 수는 없다. 많은 국민들이 우리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다. 중국 역시 북한 소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쪽이었는데 자신들을 북한 편이라고 몰아세우니 정말 북한 편이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북한의 소행으로 믿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봐야 한다.

( 2011년 10월 28일 , 제2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북핵-평화협정, 대타결을 위하여: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자')

그동안 달라진건 천안함 사태 뿐

오바마 정부는 한편으로 한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데, 그 대상이 노무현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소리를 듣고 불협화음을 빚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동맹을 중시하겠다는 오바마를 만나 북한과 대화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나와서 일이 꼬였다. 현재 워싱턴은 북한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 문제를 풀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 정부가 나서서 그래도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따라오는 게 미국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 반대다. 한미동맹 노선이 북핵 문제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말로는 해결 의지가 있지만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 지난 2년 6개월동안 한 일을 보자. 지난해 1월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만나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요구했다.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한 적도 없고 오히려 조건 없는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진정성을 보이라고 한다. 그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천안함 사태 뿐이다.

( 2011년 10월 28일 , 제2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북핵-평화협정, 대타결을 위하여: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자')

햇볕정책 지속됐다면 극단 대결 막아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부터 햇볕정책의 승계를 거부했으며, 그 반대인 비핵개방3000정책을 천명했다. 당시 햇볕정책 전문가들도 통일부 자문단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나는 참여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만약 이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했다면, (그리고) 이번 상황에 대해 나보고 책임지라면 질 용의가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3년 전에 햇볕정책 계승을 거부하고 그 반대의 정책을 썼기 때문에 우리가 책임질 일이 없다. 햇볕정책을 침몰시킨 정부가 이제 와서 남북관계가 잘못되니 햇볕정책 탓이라고 하면 안 된다. 햇볕정책이 지속됐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냐는 질문은 가상 상황을 전제로 한 질문이기에 대답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나는 햇볕정책이 지속됐으면 이렇게 남북이 극단적인 대결상황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 2010년 12월 09일 , 위클리경향 인터뷰)

6.15, 10.4 계승은 의무

북한 입장에서 정상선언들은 최고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합의문건이고, 2000년 이후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써온 근거…최상위문서인 이 선언들을 무시하면서 비핵화공동선언 등 하위의 남북합의들을 준수하라고 촉구하는 건 모순…이 대통령의 국회 연설과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연설에서 전반적으로 (대북) 정책전환 의지가 읽히나 미진하다. 인내심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기존 강경정책 방향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북핵과 관계없이 한반도의 근본적 정세변화에 대응한 변화가 필요하고 20년 후 한반도를 상정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대통령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으로 나서야 가동할 수 있는 정책이나, 현 시점에서 대북정책의 핵심과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으로 나아가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것이 돼야 한다

( 2008년 07월 22일 , <연합뉴스>)

북한이 핵실험해도 대북포용정책 유지해야

(북한의) 핵실험으로 우리가 추진해 왔던 정책의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대북 포용정책이 폐기되거나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2006년 10월 10일 ,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발언)

GP 철수해야

남북이 GP(전방경계초소. Guard Post)를 철수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GP는 휴전선 남방한계선에 설치돼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전략적 군사판단을 좌우하는 현장 정보를 확인·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곳이다.

( 2006년 02월 16일 , 외교통상부 청사 재외 공관장 대상 강연에서)

병사들에게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갖도록 하지 말고…

앞으로는 병사들을 교육할 때 북한에 敵愾心(적개심)을 갖도록 하는 것보다는 시민정신과 국가에 대한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무궁화회의는 국방정책과 안보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개최되는 年例(연례)회의로, 全軍의 장성 440여 명이 참석한다. ‘2004 무궁화회의’에서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비판한 김광현(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 준장은 2005년 1월, 계급 정년을 3년이나 앞두고 早期(조기) 전역했다.

( 2004년 06월 19일 ,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04 무궁화회의’ 강연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對北)사과요구론 제어가 필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협정을 추진해야 하며 원활한 회담 추진을 위한 사전 정비작업으로 김정일 답방 시 사과 요구론의 제어가 필요하다.

( 2001년 07월 01일 , 세종연구소刊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방안>에서)

김일성의 인격과 천부의 자질을 북한 인민이 헌신적으로 받아들여

김일성의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북한 통치는 베버의 표현대로라면‘지배자의 인격과 그가 지닌 천부의 자질’을‘인민’이‘헌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 2000년 03월 31일 , 이종석 著, <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에서)

김일성은 밀고 당길 줄 아는 유능한 협상가

김일성은 독재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유능한 협상가였음에도 틀림없다. … 휴전 이후 41년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의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한국 정부나 미
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의 반은 김일성과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우리에게 항상 무모하리만치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해 보이지만 실은 전쟁을 두려워하며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김일성은‘천재성’이나‘영웅성’선전을 통해서 카리스마를 구축한 다른 공산지도자들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절대화한 사회질서와 윤리를 새로이 창출했다.

( 2000년 03월 31일 , 이종석 著, <현대 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서)

仁德政治(인덕정치)야말로 김일성 카리스마의 표상

수령은 대중으로부터 충성과 효성을 맹세받는 대신에 以民爲天(이민위천)의 정신으로 인민을 대하고‘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정치’, 즉 仁德(인덕)정치를 공언한다.‘ 인민을정치의주인으로여기고인민에대한사랑과믿음으로모든
정치를 해나가는 것’으로 정의되는 이 仁德政治(인덕정치)야말로 현대와 봉건의 착종으로 특징지어지는 김일성 카리스마의 표상이라고 할 수있다.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현대 사회주의와 봉건적 가족국가관이 결합되어 만들어 낸 독특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다.

( 2000년 03월 31일 , 이종석 著, <현대 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서)

김일성은 自主시대의 개척자

김일성은 우리에게 숱한 부정의 이미지로 얼룩져 있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현대사에서 최초로 대외적으로 自主性(자주성)을 선언하고 主體(주체) 확립의 기치를 내건 지도자였다.

( 2000년 03월 31일 , 이종석 著, <현대 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서)

북한의 미사일 문제 해결은 경제적 보상으로 해야

북한의 미사일 개발문제의 해결은 미사일 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하는 것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

( 2000년 02월 01일 , '대북포용정책 2년의 평가와 과제' 에서)

열악함 속에서도 김일성은 조국해방과 혁명에 대한 열의를 가져

김일성과 그 동료들의 對日(대일)항전은 거대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서 소수의 인원과 열등한 무기를 가지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싸운 투쟁이었다. 이 싸움에서 그들이 日帝(일제)보다 우수하다고 자부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혁명적 열의뿐이었다. 물질의 궁핍과 환경의 열악함 속에서 그들을 견디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祖國解放(조국해방)과 革命(혁명)에 대한 열의였다.

( 1993년 01월 01일 , 자신의 박사논문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김일성은 민족의 영웅

당시 김일성은 일반 민중에게‘공산당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있었다. … 요컨대 조국광복회에서 민족통일전선 운동의 실천적 경험자였던 김일성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抗日(항일)무장투쟁의 聲價(성가)로 담보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후 혼란했던 북한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 1989년 01월 01일 , 이종석 著석사논문 <북한 지도집단의 抗日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김일성은 군사지도자로서 최고 지도자

김일성은 군사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동만[東滿洲] 일대를 배경으로 抗日(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이다.

( 1989년 01월 01일 , <북한지도 집단의 抗日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진정한 통일은 이 땅의 제국주의 세력 축출

오늘날 통일운동을 주도해 가는 민족민주 운동 진영에 있어 진정한 통일은 한국 사회를 강점해 분단함으로써 한국 민중을 고통의 늪에 빠뜨리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는 帝國主義(제국주의) 세력을 이 땅에서 축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 1988년 09월 01일 , <사회와 사상>에 기고한 ‘남한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에서)

김일성은 정통성을 기반으로 현지 지도 등을 실천

소련이 左派(좌파)의 다른 政派(정파)들을 제치고 계획적으로 김일성을 지원하고 조종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 김일성은 항일 무장투쟁에서 얻은 그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직후 북한 사회에서 통일전선의 모색과 군중노선의 추구 그리고 현지 지도 등을 실천했다.

( 1988년 09월 01일 , <역사비평>에 기고한 ‘북한사회주의 정권의 성립과정’에서)

인물정보

출생

  • 경기 남양주 (1958)

학력

  •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1993)
  •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1989)
  • 성균관대 행정학 학사 (1984)
  • 서울 용산고 (1977)

주요 경력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2006.02)
  • 제32대 통일부 장관 (2006)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2003.03)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2003)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연구센터장 (2002)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1분과 정치행정 위원 (2001.05)
  •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 (2000)
  •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수행원 (2000)
  • MBC 통일문제 자문위원 (1997)
  •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1996)
  •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 (1994)
  • 경희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강사 (1989~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