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金根植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 북한 위협론으로 국민 불안 증폭 시도

    (2010)

발언록

北사이트 접속 통제 풀면 친북세력 적어질 것

(북한사이트 접속 통제에 대해) 남쪽 시민들은 재미가 없어서 보지도 않을 사이트를 꽁꽁 묶어놓고 있다. …북쪽 정보를 풀면 오히려 보수세력이 우려하는 친북세력이 더 적어질 것.

( 2012년 02월 06일 , <한겨레> 인터뷰)

다음 햇볕정책은 (정권 바뀌어도) 물러설 수 없는 제도화를 꼭 해내야겠다

이명박 정부 임기 4년 겪으면서 느꼈지만 너무 쉽게 남북관계가 역진했다. 10년동안 피땀흘려서 남북관계 진전시켜 놨는데 정권 바뀌고 이 모든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력화되는 것 뼈저리게 느꼈다. 다음의 햇볕 포용정책은 비가역적인,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제도화 안정화를 꼭 해내야겠다, 정권 바뀌더라도 구조적 안정성 갖게 하는 게 필요하다.

( 2012년 01월 17일 , 한반도 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 토론회 발언)

어버이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보여준 김정은의 눈물

북한은 ‘사회주의 대(大)가정’이라는 개념에 따라 어버이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강조한다. …인민의 어버이 김 위원장이 죽었는데, 적장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데 효과적.

( 2011년 12월 30일 , <경향신문> ‘동상 세우지 마라’ 유언에 김정은 또 눈시울… 충성·효성 ‘눈물의 정치’)

김정일 위원장의 공과(功過)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논쟁적

한 인물의 죽음을 맞아 그의 생애를 돌아보고 인간적 소회에 젖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그의 꿈과 좌절을 돌이켜보는 것이야말로 부고 소식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가 아닌가 싶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꿈은 있었다…김정일 위원장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논쟁적이다. 그러나 그도 개혁개방의 꿈이 있었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시도했음은 분명하다. 물론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고 여전히 북한은 위기이고 결국 그는 죽고 말았다. 그의 꿈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조의를 표한다.

( 2011년 12월 24일 , <경향신문> '김근식의 한반도 리서치')

남북 정상회담 전에 10·4선언부터 이행해야

대북 압박과 강경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약속한 개성공단 기숙사를 집단소요 위험 때문에 짓지 않는 정부, 주기로 한 옥수수 5만t도 북이 달라고 해야만 주겠다는 정부, 사료용으로 쓸지언정 남아 도는 쌀을 결코 북에는 줄 수 없다는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생각할 게 아니라 10·4선언 이행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는 많은 합의가 생기고 사라지곤 했다. 7·4공동성명과 기본합의서도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다. 6·15공동선언도 말을 꺼내기 무색하다. 또다시 10·4 선언이 잊혀진 합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 2011년 10월 01일 , <경향신문> '김근식의 한반도 리서치')

北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시인 및 사과) 걸어놓고…

북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注: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시인 및 사과)을 걸어놓고 그것을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면서 대결을 지속할 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긴장고조와 전쟁위기일 뿐이다. 대화가 아니라면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은 마땅치가 않다. 2011년 한반도의 봄을 또 다시 이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결국엔 외교적 왕따가 되거나 아니면 작년보다 더 큰 위기와 불안에 떨어야 할지도 모른다.

( 2011년 04월 13일 , <경향신문> '김근식의 한반도 리서치')

북한 위협론으로 국민 불안 증폭 시도

(천안함 사고를 빌미로) 북한 위협론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거나 북한 관련 빅 이벤트로 유권자들의 감동을 확산시켜서 여당에 유리한 정치적 결과를 산출하겠다는 시도는 이제 탈냉전 이후 꾸준히 지속된 남북관계와 우리 국민들의 민도(民度) 성숙으로 인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 2010년 04월 06일 ,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화폐개혁의 진정한 성공은 북미관계 정상화

화폐개혁의 진정한 성공은 내부의 정치적 타격과 경고가 아니라 외부의 대규모 자원 투입을 가능케 하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북한의 경제 회생에 있다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009년 11월30일 취해진 북한의 화폐개혁은 비대해진 민간경제를 짓눌러 인민 통제를 강화하는 목적이었으나 완벽하게 실패했다. 통제강화는커녕 불평·불만만 커졌다. 장마당에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온 일반 주민은 죽음에 몰렸고 물가상승과 식량부족은 민심이반과 내부동요로 이어졌다. 절도와 강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고 주민들 식량탈취에 맞서 군대의 發砲(발포)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 2009년 12월 07일 , 폴리뉴스 기고문)

2012년 강성대국 달성을 위해 화폐개혁 실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2012년‘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北이 市場(시장)세력을 타격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정치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정치적 목적의 성공은 공급 확대와 물가안정에 달려 있고 이는 내부 예비 자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외부의 대규모 자원 투입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北이 지금 북미 관계 개선을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일이 2009년 단행한 화폐개혁은 배급제에 기반한 수령 우상체제를 공고히 하여 아들 김정은에게 물려주기 위함이었다.

( 2009년 12월 03일 ,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혁명열사릉을 참관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열린 자세의 하나

국립현충원을 참관하는 것과 혁명열사릉을 참관하는 행위는 결코 상대체제에 대한 충성맹세가 아니며 단지 화해협력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열린 자세의 하나일 뿐이다.

※북한의 혁명열사릉은 우리의 국립묘지, 그 중에도 건국 유공자 묘역과도 같은 곳이다. 평양시 인근 대성산에 위치한 혁명열사릉은 주로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혁명 1세대들이 묻힌 곳이다. 애국열사릉보다 격이 높다. 평양 신미리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은 북한 체제에 기여한 군인, 남파간첩, 비전향장기수 등 골수 공산주의자들이 묻힌 곳이다. 혁명열사릉, 애국열사릉, 김일성의 시신이 안장된 금수산기념궁전은 북한의 3대 혁명 성지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 3곳을 訪겗(방북)시 방문 제한 구역으로 규정했다.

( 2006년 08월 08일 ,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한반도 긴장해소는 햇볕정책밖에 없다

이번(서해교전) 기회에 안보태세를 재정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반도의 긴장해소를 위한 대안은 햇볕정책밖에 없다. … 이번 기회에 남북 군사당국자 실무회의를 열어 NLL문제를 논의하고 연평도 부근에 남북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는 등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냉전근본주의’에 익숙한 햇볕정책 반대론자들이 이 정책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 북한과의 화해·협력이 한국과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 2002년 07월 02일 ,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물정보

출생

  • 전북 전주 (1965)

학력

  •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수료 (1999)
  •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수료 (1991)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88)
  • 전북대 사대부고 졸업 (1983)

주요 경력

  • 제18대 국회의원 4·29 재보선 민주당 후보(전북 전주 덕진) 출마 (2009)
  • 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2007~)
  •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2007)
  • 경남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2005~)
  •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02~2005)
  • 통일교육협의회 이사 (2001~2003)
  •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2000)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정치외교문과위원 (2000)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외 정책위원 (2000)
  •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상임연구원 (1998~1999)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1995~1998)
  • 정책기획위원회 연구원 (1991~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