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李光宰

중국 칭화대(淸華大) 공공관리대학원 객좌교수

  • 한미FTA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북한FTA를 추진하려고 한다

    (2011)

발언록

한미FTA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북한FTA를 추진하려고 한다

(“한미FTA는 보수이데올로기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강대국 미국에 대해 굉장히 불안감을 갖고 있는 거 같은데, 우리가 언제 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길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고,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을 질주할 거라고 생각했느냐…저는 한미FTA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우리나라는 수출해서 먹고 살기에 FTA를 하게 되면 세금이 낮아져 국민들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현재 FTA를 보면 후퇴돼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제 꿈은 한미FTA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북한FTA를 추진하려고 한다. 그리되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 일거에 경제부흥 효과가 올 것이다…사대주의적 미국은 반대하지만 미국에 대해 존재하는 실체를 현실로 인정하고 미국에 당당했으면 좋겠다.

( 2011년 07월 07일 , 충남대 사회과학대학생회 주최 ‘강대국의 흥망성쇄역사를 통해 본 우리나라의 가야할 길’ 강연)

북한인권법은 反북한주민법

북한인권법은 북한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법 제정으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 체제위협을 의식한 북한주민들에 대한 통제 강화 등을 초래하여 북한주민들의 실질적 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反북한주민법이다. … 이 법은‘뉴라이트 지원법’이다. 북한인권 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대북 삐라·풍선 살포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 2010년 02월 11일 , ‘북한인권법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날치기 처리 규탄 성명서’에서)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

재판 결과든 실체적 진실이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 새 인생을 위해 정치를 떠날 것이고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
※이광재의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는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1심선고 직전인 2009년 9월9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는 “의원직을 버리겠다는 당초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봉하마을로 내려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지낼것”이라고 밝혔다. 그는선고 직후 “朴회장으로부터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력
했고, 지금도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 출마해 강원지사에 당선됐다. 李씨는 강원지사 당선과 별개로 1심, 2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 2009년 03월 26일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前농협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나온 발언)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개정안, 발의에 참가할 것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주도하는 ‘수소 등 특정고압가스를 풍선 및 애드벌룬에 주입해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개정안, 발의에 참가할 것이다.
※탈북자단체의 對北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對北전단 살포 처벌’ 법안 공동발의하며 나온 것이다.

( 2008년 11월 24일 , 국회의원 보도자료)

'우울해서 잘랐다’고 짧게 대답했다

全斗煥정권은 철권을 휘둘렀다. 저항의 강도도 더해갔다. 주변의 선배와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갔다. 학생회관에서 떨어지는 학생도 있었고, 제 몸에 불을 지르는 학생도 있었다. 1986년 신림동 4거리에서 서울大김세진과 이재호가 분신을 시도했다. 몸에 불이 붙어 비틀거리면서 구호를 외쳤다. 떨어진 간판에 살점이 녹아 내렸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나도 투신과 분신을 생각했다. 그 생각은 망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나는 죽을 용기가 부족했다. 죽지는 못하지만 사는 한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태극기 하나를 샀다.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혈서를 썼다.‘ 절대변절하지않는다. ’나는 그 피묻은 태극기를 이화여대 선배에게 건넸다. 나를 지켜봐 달라고.

※이광재는 주사파, 김일성주의 조직인 연세대 ‘구국학생동맹’ 핵심간부로 활동했었다. 그는 대학시절 스스로 오른손 둘째 손가락을 잘랐고 이로 인해 군대를 면제받았다. 1987년 11월18일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돼 1988년 3월11일 징역2년, 집행 유예 3년, 자격정지 2년 刑이 확정됐지만, 같은 해 12월21일 특별 사면된다. 2005년 6월호 월간조선은 한나라당 前김용학 의원의 증언을 보도했다. “여러 후보들이 ‘당신 손가락이 왜 없느냐’고 따져 묻자, 이광재 의원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계속 질문이 이어지자 이광재 의원은 ‘우울해서 잘랐다’고 짧게 대답했다. 하도 어이가 없는 답변을 해서 다른 후보들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 이광재 著, 자서전 <우통수의 꿈>)

인물정보

출생

  • 강원 평창 (1965)

학력

  • 원주고
  • 연세대 법학과 졸업

주요 경력

  • 대법원으로부터 징역형 선고, 강원도지사직 상실 (2011. 1.27 )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묘역조성지원위원회 위원장 (2010)
  • 민선 5기 제35대 강원도지사 당선 (2010)
  • 2008년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2008)
  •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강원도당 위원장 (2007)
  •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위원장 (2006)
  • 열린우리당 강원도당 위원장 (2005~2006)
  • 열린우리당 기획담당 원내부대표 (2004)
  •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국정상황실장 (2003)
  • 노무현 대통령 후보 기획팀장/ 대통령당선자 기획팀장 (2002)
  •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2002)
  • 조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 기획실장 (1995)
  • 지방자치경영연구원 기획실장 (1993)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2년,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형 확정(1988년) 후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
  • 노무현 제13대 국회의원 비서관1988~1992
  • 17대, 18대 국회의원2004~2010, 강원 태백·영월·평창 정선 선거구
  • 국회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별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