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

閔庚宇

21세기 의견공동체 대안과미래 연구실장

  • 나는 北의 통일정책을 상당부분 지지한다

    (2004)

발언록

反제국주의라는 목표 하에 혁명적 수령관, 일당체제를 통합한 것은 北의 강점

필자가 보기에 북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견해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서구민주주의의 잣대를 가지고 주로 혁명적 수령관, 일당체제를 비판하고 그러한 정치체제가 기형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비합리적인 특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 고도의 군사체제, 세계화된 주류 질서와 대립하는 민족적 요소의 강조 등이 그러하다. 전근대적 전통의 강한 온존 문제는 그러한 각각의 요소를 하나로 통합해내는 역동성이다. 반제(反帝)라는 목표 하에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합해낼 수 있었던 역사적 실체가 민족과 민족주의이고 그것을 실현한 것은 북의 강점이지 약점이 아니다.

( 2005년 06월 13일 , 민족에 대하여<3> 기고문. 출처-통일뉴스)

국가보안법의 소멸은 도도히 흐르는 민족 대단결 운동의 승리를 예고한다

당신(재판관)들은 판결을 통해 국가정보원 지하 밀실에서 자행된 고문과 공안검찰의 시대착오적인 수사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었다. 당신들이 법조인으로서의 소신과 양심에 기초하여 판결했다면 국가보안법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거나 설사 현재 존재하더라도 존폐 논란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설사 법률로 잔존하더라도 이미 존립 근거는 사라졌다. 국가보안법의 소멸은 도도히 흐르는 민족 대단결 운동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 2004년 08월 26일 , 서울 고등법원 309호에서 열린 항소심 3차 공판 최후변론문)

나는 조총련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조총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거기에는 김일성 주석의 논문도 실려 있지만 직장 알선, 취미 생활, 결혼 중매 등 재일동포들의 소소한 일상사와 관련된 기사도 많이 있다. 감동적인 것은 조총련계 학교 여학생들의 수기 같은 것이다.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우경화 바람이 불면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여중생, 여고생들을 일본의 우익 깡패들이 거리에서 린치를 하곤 한다. 그런데 10대의 여자아이들이 ‘조선의 넋과 혼’이 실린 치마저고리를 그냥 입겠단다. 2002년인가 조총련 학생들이 서울에서 비슷한 내용의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공연을 보면서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예쁘지 않은가? 15살이나 되었을 까만 눈의 여자아이가 검고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기타를친다. 미숙한 우리말로 ‘조선의 넋과 혼’, ‘민족의 얼과 숨결’을 말한다.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그때부터 조총련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 2004년 07월 24일 , ‘국가보안법이 일으키는 착시현상’이란 옥중기고)

고려연방제는 통일문제를 민족자주의 관점으로 본다

고려연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담긴 공통의 문제의식은 통일문제를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본다는 점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9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초반 이래 북의 변화된 입장을 잘 보여주는 문서는 93년 4월 김 주석이 발표한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이다. ‘全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서 김 주석은 남북에 존재하는 제도와 정부를 그대로 두고 연방형태의 통일정부를 구성하자고 주창한다

( 2004년 07월 15일 , 옥중서신)

나는 北의 통일정책을 상당부분 지지한다

나는 북의 통일정책을 상당부분 지지한다. 주한미군 철수나 연방제 통일방안은 88년 이후 지금까지 내가 통일운동을 하면서 유지했던 기본 노선이다. 40살이 된 지금까지 마르크스 주의나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 등의 사상과 노선을 갖고 있는 것이 내가 간첩이 된 이유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 2004년 07월 07일 , '나는 간첩인가’란 옥중기고)

공개적으로 북한 접촉하고 협력하고자 했다

우리는 서울 시내에 사무실을 두고 공개적으로 북과 접촉하고 협력하고자 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북한동포와의 접촉과 만남은 정부만 해야 하는가? 북한 동포와 만날 때 반미(反美)를 외치는 사람들은 배제되어야 하는가? 북한동포와 만날 때 노동자와 농민은 자제해야 하는가? 당신이 주장하는 남북간 만남은 이산가족끼리 또는 교양있는 사람들만이 이른바 ‘순수하게’만나야 하는가?
우리는 그런 식의 만남에 반대한다. 그리고 만남이 계속될 때마다 남북의 만남이 깊어지길 바란다. 어제 만남이 함께 공을 차는 것이었다면 오늘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고 내일은 미국의 만행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합치기를 바란다.

( 2004년 07월 05일 , 옥중기고문. 출처-오마이뉴스)

북한은 그냥 ‘통일의 동반자’

2004년의 지금 북한은 그냥‘통일의 동반자’이다. 다른 모호한 규정은 필요 없다. 만약 처벌해야 할 일이 생기면 효순·미선이를 깔아 죽인 미군에게 하는 것과 달리 실제‘간첩’으로 다루면 된다. 정치적 용어가 필요한 나 같은 사이비 간첩을 더 이상 만들지 말기 바란다.

( 2004년 07월 05일 , 옥중기고문. 출처-오마이뉴스)

(남북공동행사를 막는) 정부의 조처를 용인하지 않을 것

6·15 정신에 찬성하면 누구나 (남북공동5·16기념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이다. 올해 민간교류의 정점은 6·15대축전이다. 그런데 실무회담 과정에서부터 행사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은 대중적 측면에서 좋은 모양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별 방북 조처는 6·15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며 우리는 정부의 이런 조처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6·15대축전과 전민족적 대회틀이 열려 있는데 정부 당국이 임의로 배제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고 지금까지 대국적 견지에서 참아 왔지만 이는 맞지 않는 일이다.

※2001년 2월 남북공동행사를 금강산에서 진행한 민간단체들이 6·15 2주념 기념행사를 추진이 하던 중 통일연대 소속 민용기 사무국장의 방북이 불허된 것과 관련한 발언.

( 2002년 05월 09일 , 통일뉴스 인터뷰)

인물정보

출생

  • 서울 (1965)

학력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1989)

주요 경력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징역3년6월·자격정지 3년 (2005)
  • 6·15남북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사무처장 (2003~)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처장/재직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 (1995~2002)
  • 통일세상을 열어가는 관악청년회 회장 (1991~1995)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집행유예 (1987)
  • 한미FTA 저지 국민대책위원회 정책팀장
  •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원
  • 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