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林秀卿

제19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 탈북자들아,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 XX들

    (2012)

발언록

탈북자들아,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 XX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야 알아?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너 그 하태경하고 북한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하태경 그 X새끼, 진짜 변절자 새끼야. 야 이 X새끼, 개념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어디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어. 이 변절자 새끼들아. 너 몸 조심해 알았어?

( 2012년 06월 01일 , 종로구 소재 식당에서 탈북자 대학생 백요셉 씨에게)

조문단 제의가 오면 당연히 갈 것

(김정일 조문에 대해) (북쪽 사람들이) 어쨌거나 어려움에 처해있기 때문에 북녘 동포에게 조의를 표하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 … 민간 차원 교류까지 끊길 정도로 지금 남북 관계가 너무 얼어붙어 있어 정부 차원의 조문을 할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문해야할 필요가 있다 … 반세기 넘는 분단의 역사에 전환점이 되는 시기인 만큼 현명하게 했으면 좋겠다 … 조문이 당연한 것인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으로 이 정부가 만들었다 …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이었다면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했을 것이다. 조문단 구성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결단하면 될 문제 … 조문단 제의가 오면 당연히 갈 것

( 2011년 12월 19일 ,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한상렬 목사의 방북은 지식인의 책무를 한 것

"한(상렬) 목사가 방북한 것은 평화를 말하는 종교인으로 뿐만 아니라 분단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책무를 가지고 행동한 것 … 한 목사는 분단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이 한반도가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북한 것 …어떻게 3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나. 피끊는 심정 …

※ 한상렬 목사는 2010년 6월 12일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하여 70일 동안 북한에 체류하고 돌아와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체포되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 2011년 04월 28일 , 한상렬목사 항소심2차 공판 증언)

6·15, 10·4선언은 남북 화해 물꼬를 튼 사건

6·15, 10·4 선언 등으로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한반도에 획기적인 남북 화해 물꼬를 튼 사건을 거뒀음에도 지난 3년간은 분단 회기로 거꾸로 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시기였다

( 2011년 04월 28일 , 한상렬 목사 항소심 2차 공판 증언)

개방만 되었다면 남한의 남아도는 쌀로 춘궁기의 북녘 동포들을 도울 수 있었을 것

지난 3년간은 남북 모든 것이 단절된 시기였다 … 금강산, 개성공단이 열렸을 때 박수를 쳤지만 지금은 너무 절망스럽다. 개방만 되었어도 남녘에 남아도는 쌀로 춘궁기로 아사하고 있는 북녘 동포를 계속 도울 수 있었을 것

( 2011년 04월 28일 , 한상렬목사 항소심2차 공판 증언)

나를 친북좌파 빨갱이라고 하지만 난 좌파가 무엇인지 몰라 …친북은 맞다

"당시 북한 사람 100만 명과 악수를 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로 방송됐다 … 하지만 남쪽에서는 나의 행동이 색깔론에 휘말리고 있었다 …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나에게 '친북 좌파 빨갱이'라고 한다 … 하지만 난 좌파가 무엇인지 모른다 … 친북은 맞다
지금 북한에 10대 후반의 아이들 중에는 '수경'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많다. 당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라도 그들 편이 되어주고 싶다. 나는 이런 마음이 우리 사회에 무리를 끼칠 게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그런 것에 공감했으면 한다 … 한국에서 친북이라는 단어는 너무 부정적으로 이용을 당하고 있다. 보수 단체에서는 나를 두고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물론 남과 북이 충분히 친해지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민족 정서를 무시하기가 어렵다"

( 2009년 11월 03일 , 80주년 학생의 날 기념, 2009 대학생, 선배들과의 대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주최))

우리가 먼저 북쪽에 신뢰를 두고 다가가야 한다

"학생축전 때 46박 47일간이나 있었고(웃음) 그 후에도 세 번 갔다 왔는데 중요한 건 역시 ‘말이 통 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언어소통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대하면 정서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고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 지금 남북한은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야 할 단계라고 본다. 남 탓 말고 우리가 먼저 북쪽에 신뢰를 주고 다가가야 한다.

※임수경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했다. "

( 2003년 08월 28일 , 프레시안 인터뷰)

인물정보

출생

  • 서울 (1968)

학력

  • 오스트리아 유럽평화대학원EPU 졸업 (2009)
  • 한국외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3)
  •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졸업 (2002)
  • 미국 코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과정 (1999)
  • 서강대 대학원 언론학 석사 (1997)
  • 한국외대 불어학과(용인캠퍼스) 졸업 (1993)
  • 진명여고 졸업 (1986)

주요 경력

  • 제19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2012~)
  •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2011~)
  •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2009~2010)
  • 언론인권센터 이사 (2002~2004)
  • 방송위원회 남북방송교류추진위원회 위원 (2001)
  • 21세기 언론연구소 연구원 (2001)
  • 남북방송교류추진위원회 전문위원 (2001)
  • 사면복권 (1999)
  • 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1995)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부대변인 (1994)
  • 월간 말 객원기자 (1994)
  • 징역 5년 선고받고 복역 중 가석방 (1992)
  • 김일성종합대학 명예학사 (1990)
  • 판문점으로의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1989.08)
  •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가 (1989.06)